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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지원병과 징집병의 차이일까? 한미의 군인에 대한 온도차

by 이방인 씨 2013. 5. 28.

미국의 매년 5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은 Memorial Day입니다.
이곳 날짜로 바로 오늘이네요.
Memorial은 '기념하는, 추도하는' 이라는 뜻으로 군에서 사망한 모든 미군 병사들을 기리는 날이죠.
본래의 Memorial Day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애도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지만 이제는 복무 중에 사망한 모든 남녀 군인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을 영웅 대우하는 미국답게 이 날은 미전역에서 각종 행사들이 펼쳐집니다.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펼쳐지는 콘서트를 비롯해 퍼레이드를 하는 지역도 많고, 남북전쟁 당시를 그대로 재현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고, Memorial Day Fair를 열기도 하죠.
심지어 이 날은 쇼핑몰에서 Memorial Day맞이 세일을 하기도 한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Memorial Day를 Civil Religion (시민들의 종교) 라고 정의내린 적이 있습니다.
남북전쟁은 미국인들의 가슴에 '성스러운 역사'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군인들에게 국가 전체가 감사하는 풍토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의 스러진 영웅들을 기억하라.
그들이 바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이유다.

 

평상시에 저도 군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미국인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지난번 뉴욕에 다녀왔을 때도 공항에서 군복을 입고 군용백을 멘 사병들 2-3명이 보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디서 복무하시오?" 라며 묻고는 "Thank you for your service. We are proud of you." (나라를 위해 복무해 주는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말하더라구요.
이 말은 굳이 참전용사들에게만이 아니라 복무하는 모든 군인들에게 미국인들이 늘 하는 말이라 흔하게 듣습니다.
또한 이 말의 의미는 다른 나라와 싸우는 게 자랑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은 기피할지도 모르는 국가수호의 임무를 맡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궁금하기도 합니다.

생각중 이게 혹시 지원모집제와 징집제의 차이일까?


한국인들에게도 물론 기본적으로 군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있긴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군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면도 있잖아요.
제 고향 강원도에는 아시다시피 군부대가 많습니다.
그래서 강원도 지역에는 '군인극장'이라는 이름의 영화관들이 있을 정도인데 군인들의 단체관람을 위한 극장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죠.
제가 어릴 때도 시내에서 군인들이 삼삼오오 몰려 다니는 것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때 되면 위문편지 쓰는 건 통과의례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조금 머리 큰 남학생들이나 어른들이 군복입고 휴가 나온 군인들을 보면 '군바리'라 놀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 뒤에 XX라는 욕설을 붙이기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마 남자 어른들은 이미 본인들도 다녀왔기 때문에 나름 '선배님'이라고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군인들을 얕잡아보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요.
지원모집병들이 아닌 징집병들이라 '스스로 간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갔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군인들을 크게 존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남 얘기 할 처지는 아니라서 징하게 많이 보낸 위문 편지에는 '군인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쓰면서도 그냥 학교 숙제한다는 기분이었네요. ^^;;
그런 경험 때문인지 미국 사람들의 호들갑스런 군인에 대한 환대를 보면 은근히 속에서 작은 의심이 고개를 들곤 합니다.

소근  당신들도 그냥 습관적으로 영혼 없이 말하는 거 아닌가요??


나만 혼자 양심선언하고 죽지는 않겠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남의 다리 물고 늘어지는' 의심이죠?
아..하..하하하하하하 ^^;;
아마 그런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 모양인지 경종을 울리는 이런 포스터도 있네요.

 

Memorial Day가 그저 3일간의 연휴라고 생각하셨나요??


윽2 완.전. 찔.려.



솔직히 남북전쟁이나 미국인들이 말하는 자유수호나 제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아서 Memorial Day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크~게 죄책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100% 한국인으로 한국에 살던 시절에 현충일을 빨간날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제 자신은 무안하네요. ^^;;

이제 와서 제가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군인들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위문 편지 쓰는 요식행위 대신 학교에서 군인들에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한 교육을 한번쯤 하는 것도 좋을 듯하구요.
물론 요즘은 제가 어릴 때와 또 많이 달라졌겠죠. ^^
최근 한국에서 인기가 좋다는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저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여자라 그런지 별나라 이야기처럼 재미지더라구요.
이제 겨우 스무살 조금 넘은 반짝이는 젊음의 청년들이 답답한 와중에도 국방의 의무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징집병이든 지원병이든 군인들은 다 똑같이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국가에 무력 위기가 닥칠 때 결국 피 흘리는 것은 그 반짝이는 젊은이들일 테니까요.
그런 미안한 현실을 생각하면 미국인들의 요란스러운 "Thank you. We are so proud of you."미국인 특유의 호들갑이 섞이긴 했지만 당연한 감사인 셈이죠?

참, 저도 오늘 Memorial Day Fair에 갈 예정이랍니다.
볼 만한 것이 있다면 후기 올리도록 할게요. ^^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미국 군인들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고 하는 소리냐'며 악플다는 분들이 분명히 나오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 말하는 군인이란 '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입니다.
또한 이 글은 '군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미국 군인이 영웅이라는 내용이 아니니 글의 본질을 곡해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