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자기방어 혹은 뻔한 거짓말?

by 이방인 씨 2013. 1. 24.

미국에서 제법 오랜 기간 살면서 수 없이 많은 미국인들과 말을 섞어 보았습니다.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동료도 있고, 이웃도 있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한 번 지나친 것이 전부인 사람들도 있죠.
그들과 대화하면서 저는 특히 백인들의 말버릇 하나를 눈치 챘는데 바로 이겁니다.

 

I'm not a racist.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예요.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계, 백인계, 히스패닉계, 아시안계를 통틀어서 이 말을 가장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백인계일 것이라고 저는 경험상 확신합니다.
마치 남이 들으라는 듯 콕 집어서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을 한답니다.
물론 모든 백인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백인계가 자주 사용하더라구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조건 첫 마디 I'm not a racist 라고 시작하는 사람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들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이들이 왜 굳이 이 말을 하고 넘어가는지 알고 싶어졌죠.
그리고 제 짱구로는 세 가지 정도의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백인이 아니기에, 그리고 설령 백인에게 직접 묻는다고 해도 그들의 심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기에 제 의견은 짐작에 그칠 수 밖에 없겠지만요.

 

첫번째 - 백인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편견이 신경 쓰여서

비백인계 사람들 중에는 백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죠.
흑백 갈등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는 비백인계의 이런 인식이 꽤나 강한 편입니다.
이것을 비백인계의 백인에 대한 역(逆)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흑인계나 소수 인종이 느끼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벽이 높기 때문에 생겨난 것 같습니다.
백인들이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믿던지 말던지는 듣고 있는 사람에게 달렸지만 어쨌든 일부 백인들은 꼭 그 말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더군요.

간혹 현재의 백인들은 조금 억울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과 비백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서 둘이 서로 아주 험~한 욕설을 주고 받았다고 해 보죠.
이럴 때 비백인은 인성이 별로라는 지적만 받을 확률이 높은 반면, 백인에게는 인종차별적 성향을 가졌다는 비난까지 덤으로 쏟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성향이 있는지 확실치 않아도 그렇게 취급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일종의 자기방어로 누가 묻기도 전에 미리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두번째는 제가 아니라 제 마음 속 Evil Twin이 생각해 낸 건데요... 소심


실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제 발이 저려서 그러는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믿는 것이 밝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지만, 제 Evil Twin의 말로는 세상에는 못 믿을 사람도 많대요. ^^;;
예전에 제가 길에서 인종차별하는 백인들이 던진 콜라를 뒤집어썼다는 이야기 해드린 적이 있죠?
그 글을 썼을 당시 댓글이나 방명록에 본인은 더한 것도 맞아봤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
제가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살아있는 랍스터' 였죠.

이런 사례들을 보면 KKK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백인우월주의에 심취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있을 때야 그런 성향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겠지만 다른 무리에 섞여 있을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잘 위장해야 하겠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처럼 괜히 찔려서 말 끝마다 "I'm not a racist" 라고 광고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번째 -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해석되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란 대의를 내걸고 건국한 나라다 보니 그 두 가치를 위협하는 행위는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간단한 예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자주 받는 교육이 절대로 인종, 외모, 나이, 성적 취향 등등으로 손님을 차별하거나 혹은 차별한다는 인상조차 주면 안된다는 것이죠.
만약 상대방이 차별 받았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러한 증거를 잡게 되면 정~말 골치 아파 질 수 있습니다.
불공평한 차별을 받았다며 소송을 걸 수도 있고, 혹은 지역 사회나 언론에 알려 더 큰 문제로 발전시킬 수 있거든요.

작년엔가 미국 어느 동네의 아주 작은 식료품점에서 흑인 고객들을 차별한다며 그 지역 흑인들이 모여 가게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역 손님들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불명예스런 낙인까지 찍히는 것이죠. 
주인이 항변하기를 "오해일 뿐이다. 나는 흑인을 차별한 적이 없다." 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차별을 했을 수도 있지만, 정말 그냥 오해일 수도 있겠죠.
그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별 거 아닌 일에도 "I'm not a racist" 라고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미국 사회의 특성상, 세번째 이유는 백인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첫번째와 두번째는 제 의견일 뿐이니 토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짐작대로 억울한 백인들의 자기방어 혹은 발 저리는 도둑의 뻔한 거짓말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의견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남겨 주시고,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첫 머리에 밝힌대로 제 경험상 백인들의 빈도가 높았을 뿐, 백인들만 이 말을 한다거나 모든 백인이 그렇다는 일반화가 아님을 알려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