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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살벌하고 재미진 미국 친구 두 명의 싸움 구경

by 이방인 씨 2013. 1. 19.

오늘은 어제 글의 끝머리에서 살~짝 예고했던대로 제가 구경했던 살벌하고 재미진 싸움 이야기입니다.
싸움이라고 해서 주먹질이 오가거나 머리채를 잡는 드라마틱한 혈투는 아니고, 미국인들이 평소에 잘 하는 "입씨름" 이죠.
학교에서 같은 강의를 듣다가 만난 두 명의 미국 여자친구들의 싸움이었는데 주제는 아주 상투적이었지만 싸움 구경이라는 건 언제 해도 늘 신선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여러분도 들어보세요~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저까지 포함해 세 명이서 학교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를, 한 친구는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비프 브리또를,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파스타 샐러드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가 정말 한 웅큼, 꾸역꾸역 들어간 브리또를 보고 있던 채식주의자 친구의 심기가 아무래도 불편했는지 은근슬쩍 자꾸만 브리또를 먹고 있던 친구를 건드리더라구요.

 

너한테 뭐라는 건 아닌데, 난 사람들이 소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응???) 싸움의 전조증상 레이더가 잘 발달한 저는 이 때 벌써 불안한 기운을 느끼고 혹시 모를 불똥에 대비해 일단 피자에서 허겁지겁 페퍼로니만 골라 먹고 고기가 안 들어간 치즈 피자인 척 했습니다. ^^;;
하지만 그 친구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모를리가 없는 다른 친구는 이미 전투태세 완료입니다.

 

난 채식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도 있는 식탁에서 그런 말을 꺼내는게 얼마나 비매너인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 -------------------- FIGHT -------------------- !!!


자, 드디어 경기 시작 공이 울렸습니다.
청코너는 8년 경력 채식주의에 빛나는 A양, 홍코너는 176cm의 신장을 자랑하는 모태 육식녀 B양입니다.
오늘의 관람객은 누가 봐도 치.즈. 피자를 먹고 있는 이방인 뿐입니다.

 

A: 인간은 동물의 희생 없이도 채식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B: 야생의 다른 동물들도 모두 사냥을 통해 산 채로 잡아먹는 방법으로 육식을 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A: 생존본능 뿐인 야생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 윤리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은 파괴적이다!

B: 어이구~ 소, 돼지만 생명이고 당근이랑 오이는 무생물이냐? 어차피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은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다!

A: 소고기 돼지고기 가공하면서 거기에 어떤 화학처리를 하는지 알기나 하시나? 그런 것 자주 먹다가는 건강하게 못 살걸?

B: 우리가 사 먹는 깨끗한 채소를 그렇게 예쁘게 키우려고 농약 들이붓는 거 아시나? 게다가 공장에서 세척되어 나오는 것도 화학처리한다는 거 모르시나 본데?

 

잠자코 듣고 있던 저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요런 잡것드롸~~~ 네 놈들의 소신이 어쩌고, 신념이 어쩌고 난 눈썹 하나 까딱 않으마.
하지만 어떻게 죽이느니 어떤 처리를 하느니 거론하며 내 밥 맛을 떨어뜨리지 말란 말이다!!

내 식욕이 줄어드는 건, 날 3.5Kg의 우량아로 세상에 보내신 신께서 용납치 않으실 게다. -.-^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밖에서 누군가 싸울 때는 늘 영세중립국인 스위스에 가서 하이디랑 요를레이~ 요를레이~ ♪♬♩ 하고 싶어지는 저는 그냥 은밀하게 치즈 피자를 마저 먹었습니다.

소심


그리고 양 선수는 이 세상에 오로지 서로만 보이는 뜨거운 연인처럼 불타는 싸움을 계속 이어 갔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막판에는 미국 중동부에서 아직도 야생 소나 사슴을 사냥해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고래사냥 이야기까지 등장하고 아주 그냥 한 편의 대 서사시였죠.
하지만 장대한 전투보다 제가 더 놀랐던 것은 이 친구들이 싸우면서도 각각 샐러드랑 브리또를 다 싹싹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역시 너희들은 철학이 제대로 박힌 아이들이로다~

 

그리하여 저희 셋 모두 깨끗한 접시와 난잡한 위장을 챙겨서 식당을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채식주의자와 육식옹호자들의 싸움은 언제 들어도 결론이 안 나는 논쟁이지만 지치지도 않고 싸워대는 걸 보면 둘 다 뭘 챙겨먹고 다니는지 기력도 좋구나 싶습니다. ㅋㅋㅋ

 

먹지 말고 사랑해주세요.


 

하.지.만. 
이럴수가...!

 

난 동물을 사랑해서 채식주의자인 것이 아니라,
식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요.


그랬구나  왠지 이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끝나지 않는 논쟁,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