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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사람들도 OO에 대한 맹세를 읊을 줄이야~!

by 이방인 씨 2012. 11. 25.

요즘의 한국은 다르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시켰었어요.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안 했던 것 같지만 초등학교 때는 특별 조회나 국경일 행사 때가 되면 늘 빼놓지 않는 순서가 국기에 대한 맹세였었죠.
늘 흘러나오던 트럼펫 연주 음악도 잊을 수가 없네요.
어릴 때야 선생님들이 시키시니까 그냥 생각없이 외운 걸 줄줄 읊을 뿐이었는데, 나중에 조금 자라니까 이런 걸 왜 강제적으로 시키는 걸까 싶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애국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조국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 겠노라고 읊어대는 꼬맹이들이 도대체 뭘 알고나 있었던건지 말입니다.
지금은 한국도 이렇게 국가가 강제하는 애국교육이나 반공교육이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제 나이만 들통나는군요. ^^;;

미국에 이민 오면서 '미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일까?' 기대를 했는데 등교를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서 바로 기대가 무너졌답니다.
여기 아이들도 국경일 행사 때는 줄줄 읊어야되더라구요!
바로 이것을요.

 

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우리 미합중국 국민들은...) 이라고 시작하는 미국 헌법의 제일 앞에 나오는 서문입니다.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그냥 Preamble (서문, 전문) 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헌법에 대한 맹세] 쯤 될 것 같습니다.

저야 당연히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서 행사를 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전부 뭔가를 줄줄 똑같이 읊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미국 국가까지 부르더라구요.
저는 모든 게 낯설 때라서 이 아이들이 갑자기 왜 이러는걸까 싶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죠. ^^;;
나중에 계속 행사를 반복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들에게도 행사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순이 있었던 거랍니다.

국경일 행사가 되면 여기도 마찬가지로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서 일단 외부 초청 귀빈이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서 미국 고등학교에 있는 주니어 ROTC 장교들이 성조기를 들고 입장합니다.

 주니어 ROTC 경력도 대학 입시 때 중요한 특별활동으로 인정된답니다.

고등학생들 맞습니다, 맞구요.
그냥 노안일 뿐 해치지 않습니다~

 

이 주니어들이 절도있게 성조기를 들고 들어와 깃대에 꽂아두면 Preamble 을 읊는 시간이 됩니다.
아주 짧기 때문에 전문을 다 옮기겠습니다.

 

우리 미합중국의 국민들은 보다 완벽한 연방을 만들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제공하며, 일반 복지를 증진하며,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자유의 축복을 수호하기 위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제정하여 세운다.

 

우리의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짧고 굵은 문장 속에 어마어마한 대의가 담겨져 있죠? ^^
이 Preamble 을 읊고 나면 이제 미국의 국가를 부를 시간입니다.
국가(國歌) 는 영어로 National Anthem 이라고 하죠?
우리나라의 국가는 "애국가" 고  미국의 국가는 "The Star Spangled Banner" (별을 아로새긴 깃발) 이라고 합니다.

별을 아로새긴 깃발이란 물론 성조기를 뜻함이죠.

 

미국 국가의 가사는 원래 "맥헨리 요새의 방어" 라는 제목의 시 구절이랍니다.
1812년에 영국군의 포탄 공격을 받은 맥헨리 요새를 목격한 미국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시인인 Francis Scott Key 라는 사람이 미국 수호의 의지를 다지면서 쓴 애국적인 시죠.
내용도 아주 그냥 뭐... 전형적인 미국 스따~일이죠. ㅋㅋㅋ
제 생각엔 아마 이런 국가의 가사 덕분에 미국인들이 자유의 수호자와 영웅놀이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아요. ^^;;  
한번 들어보세요.

 

오~ 보이는가! 밝아오는 새벽 빛 사이로
황혼의 마지막 찬란한 빛 속에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환호했던,
넓은 줄들과 반짝이는 별들이 위험한 전투속에서도
우리가 지켜낸 성벽위로 당당히 나부끼는 것이!
로켓의 붉은 빛들과 하늘에서 터지는 폭탄들이야말로
우리의 깃발이 밤새 이 곳에 세워져있던 증거이니.
오~ 성조기는 여전히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 용감한 자들의 고향에서!

 

굉장히 긴 시였기 때문에 4절까지 있지만 애국가처럼 보통 1절만 부르고 끝냅니다.
사실 우리가 선조들이 이뤄주신 독립을 얼마나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하는지에 비춰보면 미국인들의 자유독립에 대한 자부심이나 조금 오글거리는 영웅주의도 이해할 수 있답니다. ^^
하지만 이해는 해도 내 나라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저는 행사 때 단 한번도 Preamble 이나 미국 국가를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동안 여러번 말씀드렸들이 이민자들 중에도 미국인이 되겠느냐 마느냐는 선택 사항이라서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다 미국인이 되길 원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갓 이민 왔다고 다 한국인으로 남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이 많은 학교를 보면 저처럼 미국 아이들이 노래부르고 있을 때 눈만 굴리는 외국출신 학생들도 꽤 있죠. ㅋㅋㅋ
그런데 이민자 학생들에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외국출신 학생이 미국 국가를 부르는 시간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미국 학생이 왜 안 부르냐고 묻길래 미국인 아니라서 부르지 않노라고 대답했더랍니다.

 

미국인이 아니라고??? 흐음... 너 햄버거 먹지?

응.

너 리바이스 청바지 가지고 있어?

응.

그럼 넌 미국인이야. 푸하하하하하하하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이 미국 학생은 미국인이 아니라고 국가 부르기를 거부한 외국 학생을 질타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미국이다보니 이제 "미국인" 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풍자한 것이죠.
이제는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의 후예들만 "미국인" 이라고 부르는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랍니다.
미국 땅에서 미국 음식 먹고, 미국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면 다 미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을 저렇게 표현한 셈이죠.
이 말은 미국인들에게 동등한 "미국인 대우" 를 받길 원하는 이민자들에게는 반가운 소리지만, 반대로 미국에 살 뿐 미국인은 아니라는 마음가짐의 이민자들은 "이게 무슨 잡소리야?!" 하고 만답니다. ㅋㅋㅋ

저도 아직까지 Preamble 을 버벅거리지 않고 말할 자신이 없네요. ^^;;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