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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갑을관계는 없다! 미국의 초간단 계약서 수정법

by 이방인 씨 2012. 11. 24.

며칠전에는 미국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에누리"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저처럼 "미국은 흥정없는 정찰제" 인 줄로만 알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오늘도 조금 의외의 소비자 권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갑" 과 "을" 이 있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되는 을은 갑보다 약자라는 인식이 있는데요.
간단한 예로, 불공정해보이는 핸드폰 약정 계약 조항들 때문에 억울해본 기억 없으신가요?
미리 인쇄되서 표준계약서인 듯 들이밀면 '아, 어쩔 수 없나보네. 다들 이렇게 계약하는가보다.'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서명을 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짐작됩니다.

저 역시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핸드폰 계약이나 혹은 인터넷 사용 계약 등등 사소한 것들이라도 표준형식인 듯 말끔하게 인쇄되어 서명만 하게 되는 계약서를 보고 불만사항이 있어도 별 수 없다여겨 싸인을 하곤 했는데요.
언젠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의 온라인 상담/조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꿀 수 없는 표준계약서인 듯 보여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인쇄되어 나왔는데 어떻게 고치냐구요??
방법은 초~ 간단합니다.

그냥 계약서 읽을 때 들고 있던 펜으로 마음에 안 드는 조항에 줄을 찍~! 그어버리고 본인의 이니셜을 싸인하면 됩니다.

 

자료사진처럼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계약조건에는 줄을 그어 삭제한 뒤, 본인의 이니셜을 적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Cross-out 이라고 하는데, 계약서 맨 밑에 최종싸인을 하기전에 이렇게 삭제하고 싶은 부분에 줄을 그어버리고 이니셜 싸인을 하면 아무리 인쇄되어 나온 계약서라고 해도 그 조항에는 동의하지 않은 것이 인정됩니다.

물.론. 혼자 집에서 읽어보고 혼자 싸인까지 해버리면 법적효력이 없구요. ^^;;
계약하는 양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Cross-out 한 뒤, 상대의 동의를 얻고나서 이니셜을 하고 최종싸인까지 하면 법적효력을 지닙니다.
이렇게 함께 있을 때 이니셜을 해도 간혹 나중에 상대방이 안면몰수하고 발뺌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Cross-out 한 조항에는 본인의 이니셜과 상대방의 이니셜도 함께 받아두면 좋습니다.
양측의 이니셜이 모두 들어있다면 발뺌 할 수 없는 법적효력을 갖게 된답니다.
하지만 본인의 이니셜만 있다고 해서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 법정에 가게되면 판사의 재량에 달렸다고 하는군요.

상대방이 동의를 안해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읽어본 변호사의 조언은 단호하더라구요.

당신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조항을 삭제해주지 않는 업체라면 아예 계약하지도 마십시오.

우리 예상보다 많은 업체에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불 조항을 제외하고는, 고객의 Cross-out 에 동의해주기 때문에 다른 업체를 찾아가면 된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머리속에 가지고 있던 에누리 없는 미국에 대한 인식과는 딴판이죠? ^^

이런 Cross-out 을 시도하기전에 명심해야할 점은 그냥 "내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이 아니라 "불공정한" 조항만 삭제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핸드폰도 그렇고, 인터넷도 그렇고 수 많은 조항을 꼼꼼히 읽어보면 문제 발생시 업체측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소비자에게 떠넘긴다거나 하는 등의 억울한 조항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쇄되어 나온 계약서를 보면 수정할 수 없다고 여기고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이런 불공정 조약은 Cross-out 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런 불공정성이 인정되면 앞서 말한 본인의 이니셜만 들어간 Cross-out 이라 할지라도 법정에서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Cross-out 과 반대되는 것으로  Interlineation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한다는 것으로, 원래 계약서에 없는 조항을 써 넣는다는 뜻입니다.

 

 

빨간 동그라미를 친 부분을 보면 줄 바깥으로 내용을 추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료에는 타자를 쳤지만, 실제로는 그냥 손으로 써 넣어도 무방합니다.
방법은 Cross-out 과 동일해서 계약하는 양측이 함께 있을 때 동의를 얻고 이니셜을 하면 되죠.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Cross-out 과 Interlineation 을 핸드폰, 자동차, 부동산 계약 등에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불평하는 계약위반 위약금 조항 같은 것도 Cross-out 으로 없애버린 사람들도 있구요.
아파트나 자동차를 렌트할 때도 주인과 흥정하여 문제발생시 지불하기로 되어있던 금액조항을 계약서에서 아예 없애는 사람들이나 추가보상조항을 넣는 사람도 있고, 다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군요. ^^
정찰제가 붙은 곳에서는 깎으면 안된다는 인식처럼, 이미 인쇄되어 나온 계약서는 아예 싸인을 안하면 안했지 고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뭐든지 일단 부딪혀봐야 되는지 안되는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사시는 주부 9단 알뜰한 저희 이모도 언젠가 한번 이동통신사의 불공정 약관 때문에 손해를 보시고 분통 터트리신 일이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계약서 조항 바꾸신 경험 있으신 분 혹시 안 계신가요??
갑을관계가 왠 말이냐! 공평한 계약서를 내 놓아라~! 내 놓아라~!! 보고있나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