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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아무리 설명해도 미국 친구가 이해 못하는 한국문화

by 이방인 씨 2012. 10. 17.

제목처럼 제 친구는 도저히 제가 이야기해준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논리로 이해를 못한게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저와 친구 모두를 답답해서 환~장하게 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스크롤 내려주세요~!

몇년전부터 미국이 시끄러운 이슈가 있죠.
바로 Same-sex marriage 혹은 더 쉽게 Gay marriage 라고 하는 동성결혼 문제입니다.
2011년 7월 24일부로 뉴욕주에서는 동성결혼을 정식인정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주에 사는 동성커플들도 뉴욕으로 날아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죠.

 

사진의 출처는 구글입니다.

 

어쨌든 예전에 미국친구와 동성결혼이야기를 하면서 국가가 개인의 결혼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한국에는 게이가 아니어도 국가가 막아서 결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동성동본(同姓同本) 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동성동본불혼법은 1997년에 위헌판결이 나고 2005년에 완전폐지되었죠.

 

그런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차 싶었습니다.
결혼 규제까지 가지도 못하고 애초에 동성동본조차 온전히 이해시키기 쉽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이죠.
같은 성까지야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같은 本 이란 개념을 어떻게 미국인이 잘 이해하게 설명해주냐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본관(本貫) 이란, 성씨의 시조(始祖)의 고향을 이르는 말이죠.
쉽게 말해 내가 쓰는 성씨를 가장 먼저 쓴 조상이 태어난 곳을 뜻하는 것인데, 성씨와 본관제도는 중국에서 들어와 신라말부터 우리나라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미국인이 알아들을리 없죠...?

그래도 어찌됐든, 본은 역사에 기록된 내 가장 오래된 조상의 고향이라는 것과 동성동본인 경우 부계의 친밀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결혼을 금지했었다고 모법답안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얼굴은..............

궁금증으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뭥미


이제 동성동본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도대체 길게는 몇천년 전에 태어난 시조로부터 부계의 친밀성을 따질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거죠.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친밀성이 뚜렷해서 금지한 것이 아니라 성과 본을 엄격하게 따르는 전통적 사상 때문에 생긴 법이야. 게다가 인구가 적고 집성촌이 많았던 예전에는 동성동본끼리 유전적 친밀성이 현대보다 훨씬 높기도 했고.
2005년에 폐지되서 이젠 결혼할 수 있어.

2005년이나 되서야 없어졌어??  이건 뭐... 게이결혼은 문제도 아니었구나.

전통과 풍습이란 원래 그런거야. 현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바꾸거나 버릴 수 없는 거라고.
너희 문화를 비웃는 건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앞으로 적어도 몇백년은 더 지나야 이해할 수 있을걸...

 

했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하더군요.

그래... 다른 나라들의 역사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그런 풍습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고.
그런데 역사가 기니까 다들 엄~청 복잡하게 사는구나. 우린 초단순해! ㅋㅋㅋㅋㅋ

 

뭐, 이렇게 결국 웃음으로 이 날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답니다.
친구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마음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했음이 분명하지만요.
그런 감정을 저 역시 미국에 살면서 수 없이 느껴봤기 때문에 친구의 반응에 전혀 불쾌하지 않았답니다.
이해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친구는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다른 문화"라고 존중해주었습니다.
수 많은 문화충격을 받으며 살아온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댓글25

  • 역사가 깊은 문화는 서로 그냥 존중해 주는 것이 정답인 듯 합니다.
    우리도 많이 변했죠.
    답글

  • 또리또리 2012.10.17 07:31

    근데 미국도 전통을 중요시 하더군요. 근데 미국은 족보가 생긴지 얼마 안되잖아요? 위로 5대조 할아버지 이름대라고 하면 누가 대답하겠습니까? 한국은 족보만 보면 다~~나오잖아요. 우리가 저렇게 동성동본을 금지하는 이유는 고려조 ,황실에서조차 삼촌, 이모와도 결혼하곤 하는 풍습이 있었어요. 덕택에 질병을 갖고 있는 유전병이 희석되지 않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래로 왕실 자제들이 혈우병이 걸렸던 것처럼 자식들도 선천적으로 특수한 질병을 평생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옛말에 "뒷간과 처가는 멀면 멀수록 좋다." 고 했는데 과학적으로 일리있는 말입니다.
    글구 동양이야 종이가 일찍부터 발달했으니 이런저런 일들을 종이에 담아 기록하는 습관이 좀 더 일찍든거죠. 헌데 서양은 당나라 현종-양귀비때 고구려 장군 고선지가 패하는 바람에 그때 종이만드는 장인이 서양으로 끌려가서 마치 일본 임진왜란 도공처럼 그 이후부터 종이 제작에 들어가 그 전에 일들을 세세하게 알 턱이 없죠.
    조선은 누가 고추 먹고 죽었다. 그럼 소문이 날테고 그걸 국가에서 방을 붙여 위험 사실을 전국에 알리고 이렇게 무언가 위험하다 싶으면 기록을 남겨 후손에게 그 경험을 알려주려 했을 겁니다.

    그래서 중국 다음으로 근친 상간의 위험성을 직시하고서 아예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한거 겠지요.

    다른예로 조선은 또 성범죄를 예방한답시고 남자들 밤에 못돌아 다니게 했어요. 초경제라고 밤 8~12시까지 남자가 밤에 나왔다가 관원한테 걸리면 일단 감옥에 가두고서 담날 장 10대 때려서 보냈습니다.
    사실 저 시간대가 남자들이 고된 농삿일 짓고 주막에서 술마실수 있는 황금 시간대 인데 그럼 술쳐먹고 여자를 희롱할 까봐 아예 성범죄의 싹을 잘라버릴려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생각보다 조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싹들을 단호하게 제거하고 지금보다도 더 여성과 아동,장애인 보호에 철두철미했답니다.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19 신고

      미국인들은 집안의 내력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회사들도 있답니다. ^^ 주로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자기네 뿌리를 알고 싶어서 많이들 찾더라구요. 아무래도 역사가 짧은 나라니까 오히려 더 알고 싶어지나봐요.
      근데 또리또리님은 정말 모르는 게 없으십니다. 전 전부 처음들어보는 이야기였어요. ^^;; 또리또리님을 제 블로그의 백과사전으로 모십니다. ㅋㅋㅋ

  • 춥파춥스 2012.10.17 10:31 신고

    일단... 뭐..... 둘이 좋으면 결혼 하라 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나 지금 뭐라는거지... 왜 자꾸 이런 연애/결혼 얘기들을 하시는지 ㅠㅠ 가슴이 아퐈요.
    응?ㅋㅋㅋㅋㅋㅋ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21 신고

      어허~! 춥파춥스님은 어제 비하면 아직 새파랗게 어리신데 싱글이라고 가슴 아플 일이 뭐가 있습니까. ㅋㅋㅋ 연애고 결혼이고 신경쓰지 마시고 젊음을 맘껏 즐기세요~ ^-^

  • 2012.10.17 10:39

    동성동본.. 이말들을 때마다 생각하는건
    엄마쪽 피는 괜찮은건가.. 한다는거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집 족보는 조선말기에 돈주고 산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이런경우도 동성동본 따져야 겠지요 ㅡㅜ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22 신고

      그러니까 말이죠. ㅋㅋ 엄마쪽 유전자는 완전 무시하고 있는 셈이죠.

      근데 온님 집안의 족보 이야기에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런 의심을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ㅋㅋㅋㅋㅋ 저희 집에도 족보가 있는데 보자기에 꽁꽁 싸매 놓기만 하고 들여다본 적은 한번도 없네요. ^^;;

  • 아빠소 2012.10.17 11:40 신고

    간단히 근친혼의 폐혜를 막기위해서라고 설명하고 동성도 같은 조상이지만
    동본은 더 근친이라고 이해해야겠지요. 옛날엔 말씀하신대로 인구도 적고,
    집성촌이 많아서 동성동본이면 근친 범위에 들었기때문에 법으로 결혼을
    금지시켰었다고 설명할수 밖에 없겠네요. 이방인님이 잘 설명하셨는데요?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23 신고

      버벅거리며 나름 짱구를 굴려봤습니다. ㅋㅋㅋ 늘 느끼는 거지만 외국인한테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테는 참 필사적이 되요. ^^;;

    • 아빠소 2012.10.19 08:43 신고

      그럴것 같아요. 그래서 모두 외국에 나가있으면 민간외교관이 된다고 하잖아요~ 내 말 한마디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결정날테니.. ^^

  • 지나가다 2012.10.17 13:44

    동성동본 이라 아주 어릴때는 좀
    이해가 안되더니 커가면서 이해가 되더라구요.
    나라마다 문화는 다르지만 수용되는 속도로 빨라지고
    문화의 상대성을 생각 되는것 같아요. 거리는 멀지만
    인터넷 이라는 공통된 문화로 알게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ㅋㅋㅋ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26 신고

      말씀대로 요즘은 정말 인터넷 덕분에 어찌보면 세계가 한 문화권에 들어와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이렇게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렇구요. ^^
      아, 참 그런데 지나가다님은 비로그인 방문객이시지만 혹시 티스토리 아이디 만들 의향이 있으시면 이메일 남겨주세요. 초대장 보내드리겠습니다. ^-^

  • 올리브나무 2012.10.17 14:46

    어떻게 그 어려운 주제를 설명하셨대요???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문화를 이해하고 못하고와 상관 없이 이 제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인지시키기도 어려운 주제 같거든요. 아마 요즘 아이들에게 말 해줘도 이해하기 어려워 할걸요???(딸 아이에게 한 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이방인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29 신고

      말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도대체 시조와 그 고향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 따지더라구요. ^^;; 그야 그냥 적혀있으니까 그렇지! 라고 말해야하니 참 난감하죠. 아마 제대로 공감하진 못했겠지만 머리로 알아듣긴 했겠죠? ^^;;
      근데 오히려 따님은 어리니까 편견없이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

  • 나그네 2012.10.17 16:26

    생물학적 요인도 어느 정도 있는 부분 입니다.

    우리 조상을 막론하고, 세계 인구가 적었던 오래전에는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문제가 없었으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전형질이 다양화 되고 변화되면서 근친혼에 따른 불량형질로 인해
    기형아 출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거죠.
    그에 따라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떠나서 독일 등 해외에도 이에 따른 근친혼을 막은 사례가 종종
    발견됩니다. 나중에는 일부분 문화로써 정착하게 된거죠.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31 신고

      아.. 그렇군요. 저도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정말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 같은 건 끔찍하더라구요. ^^;;
      근친사이의 혼인은 막아야겠지만 동성동본금혼법이 폐지된 건 전 잘된 일이라고 봐요. 현재의 실정으로 보면 동성동본이라고 근친일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거든요. ^^

  • 2012.10.17 21:43

    오!!!!이건 진짜 설명하기 힘드셨을것 같아용ㅋㅋ와우 설명난이도최상급!! 전 "왜 너네는 다 커서 성인인데도 부모님의견이 네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에도 다 영향을 미치느냐"의 토론?에서도 설명을 해도해도 못알아듣...이해를...제 설명이 부족했던건지(나름 최선을 다해 설명했건만) 정말 차 한잔 마시러 갔다가ㅋㅋㅋ아이코ㅋㅋ근데 동성동본은 진짜 난이도A!ㅋㅋㅋ그래도 참 설명 잘 하셨네요!짝짝
    p.s. 방인님 책임지셔요. 저~번에방인님이중국음식포스팅한이후로...매일차오판이먹고싶어죽겠어요.한국에선못본거같은데T_T으악먹고시풔욧!!!!!이죽일노무식탐ㅋㅋㅋ;)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35 신고

      아~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의 유착관계는.... 저도 몇번 설명하다가 속이 타들어가서 이제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랍니다. ^^;; 이 사람들은 말을 이해못하는 게 아니라 그 문화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거예요. ㅋㅋㅋ 우리도 마찬가지로 18살 밖에 안된 아이를 내보낸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잖아요. 근데 요즘은 미국부모들도 자식 결혼하기전까지 끼고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대요! 심지어 손주들 대학학비까지 부모가 마련해주는 미국인들도 많이 생겼다고 신문에서 봤습니다.

      참, 차오판은... 흐흐흐 저도 한 때 중독되서 거의 매일 먹었었어요. 근데 정말 한국에선 사먹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삵님의 식욕을 자극한 점, 사과 드립니다. ㅋㅋㅋ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10.18 06:35

    저는 저 미국인 친구 같은 입장이 된 적이 있죠. 일본은 사촌끼리도 결혼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서 말이에요. 와... 사촌끼리는 좀 심했다; 라고 생각했더랬죠. 지금도 사촌끼리는 좀 아니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지들만 좋다면 이해합니다. 만약 내 자식이랑 내 동생 자식이랑 사랑한다면 다른 나라에 보내서라도 결혼시켜줄 거 같아요 ㅎㅎ 심지어 둘다 동성이라면 뉴욕으로 보내야겠네요 ㅋㅋ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39 신고

      사촌이요?? 흐미~ 사촌이면 진짜 가까운 거 잖아요. 저랑 어릴 때 맨날 같이 놀던 우리 이모 자식이 사촌지간인데....헉! 너무 비현실적이예요. 그렇게 거의 한 식구처럼 지내던 사이에 결혼하고 싶은가??? 뭐 그 역시 일본 문화니까 할 말은 없지만 충격이네요. @.@

      참, 그런데 핀님은 아주 열린사고를 지니셨네요. ^^ 통계를 보니 동성결혼에 대해, 혹은 동성애자에 대해 남성들이 훨~씬 보수적이라고 나오더라구요. 저희 오빠를 보면 정말 알겠더라구요. -.-^

  • 잘못알고 있는듯.. 2012.10.19 01:45

    착각하기 쉽지만요.
    사실은 과거 동성동본 금지제도는
    유전자적 문제를 인식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과거 역사에서 근친간 결혼의 유전자적 문제를 인식하기란
    그 당시 지식으로는 쉬운것이 아녔습니다.
    근친 결혼의 유전자 결함 문제 발생 확률은 예상외로 낮습니다.

    동성동본 금지 관습은 오히려 왕외의 권력 결집을 막는 장치였어요.

    삼국시대,통일 신라 시대에는
    근친 결혼,일족 결혼이 오히려 흔했습니다.
    고려 시대도 마찬가지고요..

    조선이 탄생하면서,
    과거의 폐단을 개혁하려는 유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 동성동본 금혼법 입니다.
    유교는 서열을 만들어서 왕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정치 사상이고,
    그것을 위해서 사회를 안정화 시키는 장치를 연구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사회 안정화를 위해서 가족 구조 조차 서열적으로 만들었는데.
    반대 급부가 같은 성씨,일족끼리 뭉쳐서 결집하는 것에도
    유교가 사상적 근원이 되기 때문에..
    그 유교의 같은 일족,성씨끼리 뭉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동성 동본 금지법 입니다.

    더 나아가면, 같은 마을에서 결혼을 못하게 법으로 막았습니다.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의 다른 성씨와 결혼하게 만들어서
    권력 결집,반란을 막는 감시 장치였습니다.

    이런 방식은 그후에도
    정치권(조선의 정당 파벌 권력 집중)의 폐단을 막기위해서도
    같은 당파 사람끼리는 결혼 할수 없는 법도 고안됩니다.

    결혼을 하려면, 같은 마을 출신끼리도 할수 없고,
    같은 성씨,일족끼리도 할수 없고,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파벌 끼리도 할수 없게 만들어 졌습니다.
    (이것의 당위성을 세뇌하기 위해서
    폐륜등의 비난을 하게끔 유도한 거죠.기형아는 그후 이야기)

    왕에 대한 반란을 막고,
    같은 혈족끼리 뭉치는 폐단과
    같은 정치 파벌끼리만 뭉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고도의 장치이며, 억제된 관습였습니다.

    한데, 우습게도 부계(남자쪽) 혈족들의 결집을 무서워해 막으려고만
    고안되었기 때문에.. 모계(여자쪽) 혈족들의 권력 결집을 얕본 결과

    조선 왕조 내내 외척(모계 혈족)의 권력 결집에 휘둘리게 됩니다.

    조선 왕조의 실세는 외척였어요...
    (드라마에 잘 나오는 장희빈 같은 경우도 외척세력끼리의 싸움이죠.
    인현왕후의 외척 세력,장희빈의 외척세력,숙빈 박씨의 외척세력
    정당 파벌 권력도 부계 혈족에 붙는 것은 반란으로 규정되서
    처분되므로, 결국 모계 혈족으로 붙어서 정치 싸움을 벌립니다.
    이런 풍조가 조선 왕조 500년간 지속됩니다.

    비슷하게 서구의 권력 결집 반란방지 방식은
    부모 자식간을 떨어 뜨려 놓는 장치라고 생각 합니다.

    자식은 무조건 독립적으로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관습이 혈족의 권력 결집,
    반란을 막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져
    세뇌되어 내려온 것이 서구 관습의 본질이 아닐까요?


    답글

  • 추가해서 말하자면.. 2012.10.19 01:46

    조선왕조 500년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정말 특이한 사회구조와 관습을 만들었었어요.

    외국과의 교류와 상업을 극단적으로 차단합니다.

    사농공상이라고... 가장 천대 받고 경멸받는 계급이 상인였구요..
    쌍놈이라는 욕조차, 상인 계급을 말하는 겁니다.
    고대 중국의 왕국였던 상나라에서 나온 말인
    "상"이라는 단어는 상인을 뜻하고
    "놈"은 고어로 "사람"을 뜻합니다.
    쌍놈은 "장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과거 통일 신라,고려는 상업을 우대했는데,
    (자유연애도 우대..도시의 한 가운데 사원(절)이 존재했고
    사원에 목욕탕이 있어서, 남녀가 혼욕하면서 SEX를 즐겼던..쿨럭)

    폐단이 심해져서 빈부격차가 극심해졌고
    그 반대 급부로 나온 것이 "조선"의 건립이였기 때문에..
    상업과 종교활동을 극도로 억제 합니다.
    상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깔리게 되구요.절은 파괴하고 산으로 추방
    (서구도 기독교 중세시절에는 돈 만지는 상인을 멸시해서
    유대인에게 시켰죠..저주받을 종족이라고..
    그게 지금은 전화위복이 되었지만요..상인을 혐오한 비슷한 점이죠)

    또한, 사치풍조를 엄격하게 금지해서,
    색깔이 튀는 것도 혐오했습니다.
    고려 청자가 제작 금지가 되어버리죠, 만들고 쓸수 있는 것은
    색이 들어가지 않느 소박한 모양만의 백자(백색 자기)만 였습니다.

    서열을 중시해서, 각 계급에 맞는 옷만을 입어야 했고(색도 정해짐)
    건축조차 억제되었습니다. (지붕을 수리하는 것도 허락받아야 가능)
    먹는 반찬의 숫자도 계급에 따라서 정해져 있었구요.

    극도의 사회 안정과
    그 당시로는 최대한의 물질 평등을 추구했던 사회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의 이상향인 국가가 조선였다고 할까요?)

    양반이라고 평민과 많은 차이도 없는 생활을 강요 당했었습니다.
    왕도 궁궐내 자신의 논에서 농사를 똑같이 져야 하는 것도
    관습의 하나였구요.(농민들의 아픔을 체험하기 위한 장치?)

    더 들어가면, 가족간의 역할이 정해져 있어서,
    남자는 사랑채라고 집 구조의 문쪽에 위치된 방에서 기거해야 했고,
    여자는 안쪽에 있는 안채에서 기거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란 뜻이 "안쪽"입니다)
    (남편을 뜻하는 "바깥분"이라는 것이
    바깥의 방을 말하는 사랑채를 뜻하고요.)

    아이는 7살이 되면 남자만 어머니와 떨어져서
    사랑채에 기거하게 됩니다.(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분리)

    성교(SEX)조차 규칙이 있어서,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날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임신시키기 위한 방법(날짜)으로만 할수가 있었습니다.
    그 SEX에도 수십가지 정해진 규칙(몸을 깨끗히 건전한 생각을 하면서)이 있었고요..

    음식과 재산은 전부 여자가 관리..
    (쉽게 말해서,
    여자가 열받으면, 음식에 독을 넣으면 남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재산 관리도 전부 여자몫...
    며느리 교육이 혹독한게 재산과 생명(음식)의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혹독하게 된겁니다..
    아직도 그 경향이 있죠. 여자끼리의 권력승계의 무서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나기 쉬운 성범죄등을 막기 위해서
    여자는 따로 밖을 돌아다닐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남자들은 밖을 돌아 다니면 법으로 처벌...
    (어떻게 보면 이슬람보다 더 엄격했죠..)

    이런 근검 소박을 강요했던 사회였기에..

    비교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유일하게 허락된 가채(가발)로
    서로 경쟁해서 나중에는 너무 무거운 가채(가발)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는 사태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자들끼리만 볼수 있는 사회 구조였기 때문에
    남자 아이를 낳았다는 증거로 가슴을 들어내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가족외의 남자와 조우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쾌락으로 흐른다 하면, 바로 차단..금지..

    욕망과 욕심도 배제...
    이런 경직된 사회구조를 견딜수 없는 사람들은
    차라리 사당패(광대)가 되거나, 떠돌이 각설이(거지)가 되거나
    기생이 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유일하게 허락된 쾌락이 기생집 였습니다.)

    남자들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돈을 가져다 바쳐야만 가능했죠...(아직도 남은듯)

    그 기생과도 SEX 한번 할려면, 장가를 들어야 했습니다..
    집한채살 돈을 내주고 가짜 결혼식을 올린 후에나
    (머리를 들어 올려준다고 표현) 그것이 가능했을 정도 였습니다.

    조선 500년은 극도의 폐쇄 사회 였고
    그로 인해서 발생하고 고안된 특이한 관습 풍습이 많아서,
    파고 들면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답글

    • 이방인 씨 2012.10.19 03:39 신고

      그렇군요. 잘 몰랐던 역사 이야기네요.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 키아 2012.10.19 20:00

      엇,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선시대 몇몇 관습은 그냥 음, 특이하네 였는데 그런 이유였군요.
      굉장히 재미있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