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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재미교포의 소박한 독도 광고와 한글날

by 이방인 씨 2012. 10. 9.

며칠전 저희집에서 구독하는 미주판 중앙일보를 보다가 슬며시 작은 웃음을 터트린 일이 있습니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한인 비지니스 광고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죠.

 

만약 독도가 일본 땅이라면 일본은 대한민국 땅입니다.

 

조금 과한 비약이 돋보이는(?) 문구이긴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이 분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 알겠지요.
어떤 분들은 광고를 내려면 미국 신문에 내던가 해야지, 한국인들 보는 한인 신문에 내서 뭐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이 분은 아마도 미국땅에 사는 교포들의 독도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고 좋게 해석하고 싶네요.
실제로 무심히 신문을 넘기던 저 역시 이 문구를 보고 다시 한번 독도에 대해, 한일관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을 해보았거든요.

사실 그 때 생각난 것이 있어서 바로 글을 쓸까 하다가 일부러 오늘까지 기다렸답니다.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10월 9일에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10월 9일이 무슨 날인지 여러분들 모두 알고 계시죠?
그렇다면 제가 독도광고를 보고 떠올리고, 굳이 한글날까지 기다렸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편협함이라 지적하시는 분이 혹 계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독도니 일본군 성노예니 들끓으면서도 일상에서 너무 쉽게 일본어에서 나온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어사용을 강요받았던 일제강점기 시절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쓰시는 것이야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정말 이상한 건 제대로 한글 교육을 받았어야 마땅한 젊은 세대와 어린 학생들까지도 일본어에서 온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간지" 라는 말이 있죠?
멋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이 말은 "느낌" 이라는 뜻의 일어 단어라고 하죠.
우리말로 "멋있다" 혹은 "느낌 있다" 라고 해도 될 걸 왜 굳이 "간지난다" 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는 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옷을 잘 차려입고 나타난, 저보다 한~참 어린 한국 남학생이 만면에 웃음을 띄며 "저 오늘 간지나죠?" 하고 묻길래 제가 한번 되물어보았죠.

 

응. 멋있네. 그런데말야, 멋있다는 말 대신 간지난다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니?

에이~~ 그냥 멋있다고 하면 "간지"가 안나잖아요. 간지난다고 해줘야 간지가 나죠!

 

끄응... 저게 무슨 말일까요...
"간지난다고 해줘야 간지가 난다" 는 게 무슨 뜻인지 원... 아마 제가 감각이 부족해서 이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나봅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네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주 입담이 화려하고 호탕하신 여성분, 역시 저보다 어린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같은 캘리포니아에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반가워하니 이 분이 이렇게 묻습니다.

 

오~ 같은 캘리포니아네. 나와바리가 어디예요?

 

아휴... 나오느니 한숨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생겼을까요?
물론 모든 젊은 세대나 학생들이 이런 언어습관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일부의 이야기겠지만 아직도 일제강점기 시절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한 요즘의 한국을 보면 이런 사소한 입에 붙은 습관들도 안타까워집니다.

 

일본식 단어를 쓰면 멋있게 혹은 재미있게 말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왜 생겨났을까요?


첫번째로 미디어의
영향이 크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간혹 웃음을 노리고 속어로 사용되는 일본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처럼 미디어의 영향이 크나큰 시대에, 특히 어린 아이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굳이 그런 방법을 동원해야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잘 모르는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해서 빠케스부터 후라시까지 일제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단어를 마구 사용하자, 패널들은 물론이고 방청객들까지 폭소를 터트리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연배가 있는 분이셨으니 일부러가 아니라 평소 쓰던 말이 튀어나오신 것일테지만 자지러지게 웃는 TV속 사람들의 반응이 아쉽습니다.
TV를 보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나 학생들은 '저런 말을 쓰면 웃긴 건가보다' 생각할런지도 모르지요.
코미디는 코미디로만, 예능은 예능으로만 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요즘이고, 또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유발하는 프로그램들은 비판받아야하지 않을까요...

 

두번째 이유로는 인터넷 문화를 들 수 있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식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한국정서상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어 단어도 한국어에 섞어 사용하면 속어 취급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겠죠.
실제로 소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자리에서 일본식 단어를 섞어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이라면 사정이 달라지죠.
어차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따질 게 뭐가 있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속어를 남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본어를 습관처럼 쓰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오히려 그런 단어를 쓰는 것이 더 감각적이라는 듯이 말이죠.

식민시대의 영향을 벗어나려면 100년은 걸린다는 사회학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광복 67년을 맞았으니, 아직 33년이 더 남아서 그런걸까요?
33년 후면 기성세대가 되어있을 현재의 학생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잘못된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33년이 지난다고 달라지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이라는 수식어를 참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그에 걸맞게 우리말에 대한 예의도 지켜야하는 것이 아닐까 한글날을 맞이하여 다시 생각해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한국의 모든 젊은 세대나 학생들을 일반화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