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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가 한국인이라 좋다고 했던 미국친구 이야기

by 이방인 씨 2012. 9. 6.

오늘은 이제와 돌아보니 그리운 제 대학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매번 찾아가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매번 같이 밥을 먹는 미국 친구와 앉아 있을 때였죠.
평소와 다름없이 이것 저것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다를 떨고 있다가 갑자기 친구가 이런 말을 하네요.

네가 한국인이라서 참 좋아.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좋으면 좋은거지 한국인이라 좋다는 건 무슨 뜻이야?

너랑 수다떨 때마다 니가 한국인이라서 좋은 점들이 있는 것 같아.

응? 과연 그게 뭘까요???
미국친구가 말한 제가 한국인이라서 저와 대화할 때 좋은 점들, 궁금하시죠?

 

첫번째 - 넌 욕설이나 속어없이 말해서 좋아.

캘리포니아는 미국내에서도 Liberal 한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격식있게 우아함을 뽐내는 문화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지배하는 곳이죠.
모든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저는 자유로운 영혼과 거침없는 입담의 캘리포니안들을 많이 만났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캐쥬얼한 사이의 이야기고,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는 대부분 얌전한 말투를 쓰죠.
하지만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학생들 60명 앞에서 조교가 하도 FXXX FXXX 거리니까 앞에 있던 남학생이 참다못해,

FXXX right back to you!  ("너나 드세요" 이쯤으로 해석할 수 있죠. ㅋㅋㅋ)

라고 외친 적도 있었답니다. -.-;;
아, 물론 2시간을 떠들어도 단 한번도 욕설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 다들 그렇다는 오해는 마세요. ^^

저도 2시간이든 20시간이든 욕설은 전혀 안 쓰고 젊은 사람들이 쓰는 속어도 거의 쓰지 않는 편인데요.
한국에서는 한창 반항심 있을 나이인 중고등학생도 아닌 다 큰 여인이 욕설이나 속어를 쓰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쓰는 언어가 영어라고해서 달라질 이유가 없으니, 제가 나이 먹고 다이내믹한 (?) 입담 자랑할 일은 별로 없지요. 
게다가 이것 역시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정말 열 받아서 욕할려면 느낌 팍팍 오는 한국어로 하지 굳이 영어로 하고 싶지도 않구요. ㅋㅋㅋㅋㅋ

제 친구도 입이 그렇게 험한 타입은 아니고, 습관처럼 비속어를 자주 사용하는 정도였는데 저랑 수다 떨 때 가끔 의식하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흐미흐미...! 내가 분위기 못 읽어부렀구먼~!

난 전혀 신경 안 쓰니, 너 쓰고 싶은 말 마음대로 쓰라고 했더니 막 웃더니 한 마디 하네요.

난 계속 쓸 테니까 넌 계속 쓰지마. 그게 좋아!

헉...! 미묘하게 뭔가 밑진 기분이야!!

 

두번째 - 넌 OO 얘기 안해서 좋아.


이게 참... 우리나라 정서에는 맞지 않는 얘기랍니다.
OO안에 들어갈 말은 19세 이하 추측금지입니다. ^^;;
한국에서도 기혼자분들은 간혹 비밀스런 이야기도 하신다고 들었지만, 결혼도 안 한 젊은 처자들은 그런 경우가 잘 없죠.
그리고 저는 학생 때 한국 친구들과 헤어져 온지라 그런 얘기 할 상황도 전혀 없었구요.
그런데 미국에 왔더니...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내외 가리지 않습니다.
저희 동네가 뉴욕도 아니고, 제가 30대 중반도 아니니 Sex and the City 수준까지 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국보다 귀가 부끄러운 상황이 많다는 거죠.
물론 매번 그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이슈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갈 때마다 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한마디 하죠.

얘 또 입 꾹 닫고 없는 척 한다!

(하지만 안테나 쫑끗 세워놓고 다 듣고 있다는 건 모를거다! ㅋㅋㅋ)
어쨌든 그렇게 농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오늘 이야기의 친구는 제가 그런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나봐요.

미국인들이 밤낮 OO 얘기만 하는 거에 질렸어...

본인 입으로 이렇게 불평하는 걸 보니, 미국인들도 자신들이 그런 쪽에 집착한다는 자각은 있는가봅니다. ㅋㅋㅋ

그래서 이 친구가 저랑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글 맨 첫머리에 쓴대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다만 떨었지요. ^^;;
그런데 이런 소득없는 수다떨기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것 다 아시죠?? ^--^
여러분도 누군가와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 없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제 친구의 이야기로 모든 미국인들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개인적 성향으로 한국인을 일반화하고 있는 것 역시 아님을 밝힙니다. 다만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이라고는 저 뿐인 제 친구는 '아마 한국 문화는 이런가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