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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힘들어 힘들어~ 미국에서 운전하기 힘들어요!

by 이방인 씨 2012. 6. 29.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미국 생활의 장점을 이야기 할 때 평화로운(?) 운전문화를 빼놓지 않으십니다.
온 국민이 전투 운전에 능한 한국과는 도로사정이나 문화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죠.
저 역시 미국에 와서 운전을 처음 배워서 그런지 전에 한번 한국에 나갔다가 운전대를 잡은 적이 있는데 겨우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어찌나 정신없고 무섭던지 차에서 내리니 마치 급성 간경화라도 걸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간이 굳어 있었지요. ^^;;
그러다보니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운전하기 참 수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요.
그래도 사람의 불만은 끝이 없는지 이런 미국에서도 간혹 "운전 못해먹겠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함께 보시렵니까?


첫번째 - 얘들아~ 아무때나 소풍가다가
객사할 수가 있다. 유념해다오.

바로 일주일전에도 저는 소풍 나온 오리 가족 때문에 심장을 쓸어내렸습니다.
45마일 속도제한 지역에서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도로변 수풀에서 튀어나온 엄마오리와 아기오리 5마리 정도가 겨우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횡단하는 것이 아닙니까.
솔직히 말하면 급 브레이크 밟으면서 꼬꼬마 아기오리들 두 세마리는 영락없이 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전까지 9년 무사고를 자랑하며 한 번도 생명체에 닿아본 적이 없는데 정말 무언가 치게 되는 상황이 오니까 눈이 저절로 꽉 감기더라구요.
슬퍼2엉엉엉... 이제 나는 아기오리들의 살해자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구나!
손에 피를 묻힌 나는 이제 어떤 인생속으로 흘러든 것인가....!

하며 사체 수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눈을 살짝 뜨는 찰나 수풀 속으로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는 엄마오리와 전원 무사한 아기오리들을 보았습니다.
아휴휴~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요.
그러는 중에 갑자기 브레이크 밟아버린 저 때문에 뒤에 차가 밀린 걸 보고 얼른 벗어났습니다.

미국의 도로에는 이렇게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한답니다.
물로 숲이 드문 대도시는 다르지만 보통 얕은 수풀이나 나무들이 있는 지역에서는 별별 동물들이 다 튀어나옵니다.
저희 동네에는 특히 덩치가 크고 점프력이 무시무시한 미국 토끼들이 정말 겁나(?) 많구요.
한번은 학교 가는 길에 너구리가(!) 일자로 뻗어있는 모습도 봤습니다.
길에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는 작은 산짐승도 흔하고 심지어 도마뱀까지 본 적이 있지요.
도로에 차가 없어도 늘 주의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두번째 - 어르신들, 독립심도 좋지만 제발 좀 봐주세요~

땅이 넓고 대중교통은 부족한 미국에서 '운전'은 독립생활의 필수부가결한 요소입니다.
Driving Independence (운전 독립)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자유로운 생활의 조건이죠.
한국과 달리 고령의 어르신들도 혼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 미국에서 어르신들이 불편없이 생활하시려면 운전도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특별한 사고경력이 없는 운전자는 만 70세까지 별도의 재시험없이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70세가 넘으면 의사가 서명한 시력과 메디컬 테스트 합격서류를 가져와야 면허 갱신을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미국이란 나라의 방침이 노인 인구의 인권존중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최대한 오랜기간 운전을 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미국에서 운전을 못하면 거의 대부분의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집에서 제일 가까운 수퍼에 가려도 해도 7분 정도 운전을 해서 가야합니다.
노인들을 위한 운전 자원봉사자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의무가 아니라 봉사다 보니 수요를 충족시키기가 힘들어서 아직도 많은 어르신분들이 직접 운전을 하십니다.
작년 9월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에서 83세의 할아버지가 트럭을 몰고 역주행을 하시다 4중 추돌이 일어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에서도 84세의 할머님이 역주행으로 추돌사고를 내셨구요.
2003년에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지역에서 89세의 운전자가 노천시장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무려 10명이 죽고 7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도 있었습니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만 89세 그러니까 한국나이로 90세의 어르신이 홀로 운전을 하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미국에서는 그리 드문 일만도 아니랍니다.
저 역시 백발이 성성한 고령의 운전자분들 때문에 도로에서 아찔한 상황을 몇 번 겪었구요.
이렇다보니 가끔 어르신 운전자들을 보면 제 심장이 쫄깃해진답니다. ^^;;



세번째 - 아휴~ 겁 많아서 성질도 못내!

한국에서 운전자들끼리 도로위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경우 자주 볼 수 있죠?
추월하다가 싸우는 경우도 있고  깜빡이를 켰네 마네로 싸우는 경우도 있고 말이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구경하기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우선은 도로가 넓고 여유있는 운전문화다보니 싸울 일이 잘 안 생긴다는 것이 크죠.

하지만 두번째 이유는 바로 무서워서! 입니다.
도로에서 시비 붙었다가 운전자가 총 꺼내들고 쏘는 일이 간혹 일어나거든요. -.-;;
저희 지역 고속도로에서도 운전자끼리 싸우다 한 명이 총 맞아 죽은 일도 있었고 속도위반 단속하던 경찰이 추격전 끝에 운전자가 쏜 총에 맞아 죽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범죄율 낮기로 유명한 조용한 소도시인데도 이런 지경입니다.
저랑 다르게 저희 아버지는 한국에서 운전을 25년이나 하시던 분이셔서 운전하실 때 조금 성질을 내시는 스타일이신데요.
그런 아버지도 뉴스에서 몇 번 그런 사건을 접하시더니 얼마나 성질 죽이고 운전하시는 지 모른답니다. ^^
일전에 온 가족이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에 놀러가던 중이었는데 깜빡이도 안 키고 차선 3개를 그냥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힙합 스타일의 차량이 있더라구요.
아버지가 브레이크 밟으시면서 험한 말이 나오고 옆으로 가서 운전자에게 눈빛이라도 한 번 쏘아주려는 찰나, 옆으로 슬쩍 보이는 운전자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흑인입니다.
편견을 드러내기 참으로 미안하지만 여기서 살면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을 보면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유 없이 그저 홧김에 총질하는 범죄자의 상당수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기 때문에 총하고는 거리가 먼 동양인들이 그들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아버지가 속으로 삭히시면서도 분해하시는 것이 못내 재밌기도 해서 제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  아이고~ 우리 아버지, 성질 많이 죽으셨어요. 
암요, 그럼요, 목숨이 하나라면 알아서 기어야죠. 키득키득

이상 농담은 해도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미국의 도로 사정이었습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 같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