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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할아버지들이 나만 보면 참을 수 없는 이야기

by 이방인 씨 2012. 6. 25.

미국 생활 중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을 꼽으라면 저는 학교가 아닌 아르바이트 경험을 들겠습니다.
여러번 언급한대로 저는 3년정도 미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미국인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백발이 성성하거나 머리가 다 빠져버린 할아버님들이 간혹 저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 손님들은 제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시다가 이렇게 물으시죠.

생각중 "Are you Korean by any chance, dear? 자네 혹시 한국인인가?"

이 질문이 나오면 저는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많이 겪다보니 왜 물으시는지 알 것 같기 때문이죠.
이렇게 물으시는 분들의 대다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의 물음에 왜 마음의 준비까지 필요하냐구요?
오랜 경험으로 저는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할아버님들이 저를 붙잡고 한~오백년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을 말입니다.

미국 어르신분들은 대체적으로 말씀들이 많으십니다.
한국과 다르게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혼자 사시는 경우가 많아서 늘 적적하고 말 상대가 없기 때문에 밖에 나오게 되면 아무나 붙잡고 대화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죠.
때문에 미국에는 어르신분들과 대화상대가 되드리는 자원봉사자들도 많구요.
이렇게 안그래도 말씀이 많으신데 참전용사분들은 영웅담까지 있으니 그 분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안납니다.
거기다 제가 한국출신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대화상대를 어디서 찾으시겠습니까.
제가 일한 식당에는 약 일곱분의 정도의 참전용사 단골 손님들이 오시는데 그분들이 한결같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 중국군의 공포의 인해전술

할아버님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는 것이 바로 우리는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인해전술입니다.
한 할아버지는 중국군과 북한군은 꼭 좀비들처럼 끝도 없이 밀려왔다고 회상하시더라구요. ^^;;
심지어 중국군이 밀려오는 속도를 실탄 갈아끼우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해서 그게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도 하시구요.
또한 북한군들은 정말로 두려움을 모르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고 합니다.
한 할아버지의 말을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멍2We were good soldiers but North Koreans were GREAT soldiers.
우리는(미군) 훌륭한 군인들이었지. 하지만 북한군은 엄청난 군인들이었어!


그 때 너무 고생을 하셔서인지 아직도 할아버님들은 북한이라고 하면 진저리를 치십니다.


두번째 - 한국은 이제 그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아!

이게 무슨 얘기냐구요?
참전용사 할아버님들은 모두 1950년대 초반의 한국땅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회상 속 한국은 너무나 아름다운 한강과 야트막한 산들 그리고 순박하고 수줍음 많던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저야 그 마음을 모르지만 많은 참전용사분들은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전쟁 후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신 분들도 꽤 많으시고 다시 돌아가보지 못하신 분들도 한국에 관한 뉴스라면 관심있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다시 다녀오신 분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한데요.
우선 경제적으로 놀랄만큼 발전한 한국을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시지만 그 때문에 그 시절 너무 아름답던 땅이 많이 변했노라고 아쉬워하십니다. 
한국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셔서 그 후 3번이나 한국을 더 찾으셨다는 한 할아버지는 저를 볼 때마다 한강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시절 한강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으셨는데 지금 수 많은 다리와 고가도로가 놓인 한강을 보면 너무나 슬퍼진다고 하시더라구요.
게다가 서울을 찾으신 분들은 어딜가나 사정없이 빵빵거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다고 하네요.
이것 참, 저도 그 시절을 모르는 한국인으로서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세번째 - 들어도 들어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좀비 중공군이나 변해버린 한국의 모습 이야기는 제가 몇 번이고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할아버님들은 오실 때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시기 때문에 저는 어느 대목에서 어느 대사가 나온다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죠.
물론 지루했지만 할아버님들이 침까지 튀기며 수다 떠시는 것을 보면 참 귀여우시기도 해서 불평없이 잘 듣곤 했는데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긴 있습니다.
바로 전쟁 당시 할아버님들이 사용하시던 각종 무기에 관한 설명입니다.

엉엉 이건 정말 답도 없습니다.


한국 여성들이 제일 흥미없어 하는 이야기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말도 있던데 이 할아버님들의 무기에 대한 이야기는 말입니다.....
마치 전국 군부대 대항 축구 대회가 열려서 64강부터 결승전까지의 경기를 모두 출전한 남자친구가 들려주는 궁극의 군대축구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물론 세상에 그런 상상불가의 시련이 존재한다면 말이죠.  웃겨


그래도 총이나 대포같은 지상병력의 무기를 설명해 주시는 분들은 양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이 어떻게 발사되고, 맞으면 어떻게 되고 실탄 장전과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등 그나마 들으면 알아듣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번은 공군 파일럿 출신 참전용사 할아버님이 오셔서 전투기 조종과 미사일 발사, 적군 전투기와의 추격전, 적군 지상병력 공략 등등의 자세한 테크닉을 설명하시는데 정말이지....생애 첫 유체이탈을 경험했습니다.

헐가..가...가공할 만한 정신 공격이다.......
세울수도 없는 고속도로에서 배탈나서 내가 아는 모든 신의 이름을 되뇌일 때도 이렇게까지 자아가 붕괴되지는 않았었는데...!


할아버님들이야 매번 하실 때마다 새로운 본인들의 무용담이지만, 달팽이관에 다운로드됐을만큼 많이 들었던 저에게는 할아버님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 마법의 대사를 하면 됩니다.
우와~ 꼭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의 실제 주인공이시네요!! 대단하세요~ 참잘했어요


이러면 할아버님들은 그~냥 입이 귀에 걸리십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저는 세계 어디에서나 어르신 분들은 도로 아기가 된다는 말을 절감하죠. ^-^

오늘은 한국전 참전 용사 할아버님들과 무한반복되는 데자뷰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가슴 아픈 역사이기도 하지만 이 할아버님들에게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인생의 한 부분이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