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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의 한국 드라마붐 때문에 낯 뜨거운 사연

by 이방인 씨 2012. 4. 30.

몇몇 포스트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대로,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저희 가족은 각자 알고 지내는 아시안계 친구들에게 인기 폭발인데요.
그 이유는 바로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한류붐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하는 가게의 단골 손님이신, 일본계 미국인 아주머니는 박효신씨의 모든 앨범을 유리로 된 고급 장식장에 넣고 자물쇠까지 채우고 보관하신다고 하구요.
학교 카페에서 어슬렁 거리던 저희 오빠에게 몇몇 남학생들이 혹시 한국인이냐며 다가와 소녀시대 얘기를 한도 끝도 없이 물어본 적도 있다고 하구요.
또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와 알고 지내던 아시안계 미국인 친구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저한테 한국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연예인 등등의 얘기를 늘어놓곤 합니다.
K-POP뿐만 아니라 유재석님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을 정도로 예능 프로그램들도 인기가 많습니다.

이들이 한국 문화를 접하는 방법은 물론 인터넷도 있지만, 한인 마켓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한국 DVD 샵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가끔 애용하는 한국 DVD 샵에는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방송 3사와 케이블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DVD로 대여되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등등의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방영되는 그 날 바로 DVD가 나오기도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립니다.
제 친구들도 매주 한국 DVD를 보고 그 속에 등장하는 한국말들을 제게 물어보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는 문화적 차이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늘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제가 아는 만큼 대답해주곤 하는데요.

사실 요즘은 친구들의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바로 한국에 만연한 '막장 드라마' 들 때문이죠.
정말 어이상실, 개념상실의 끝을 달리는 드라마들 때문에 제가 곤란했던 사연들 한 번 들어보시죠.

첫번째 - 한국 사람들은 진짜 저렇게 지조 없어?

이건 알게 된 지 1년 정도된 필리핀계 미국인 친구에게 어느 날 들은 질문입니다.
그 친구는 한국 드라마를 너무 사랑하는 부인덕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빌려다본다고 하는데, 빌려오는 드라마마다 족족 연인들이 서로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내용만 나온다고 하더이다.
저한테 진짜로 한국에선 저렇게 복잡하게 남녀가 사귀고 배신하고 헤어지냐고 묻는데 정말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요즘 자극적 소재가 인기가 많아서 그런것 뿐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

할 수 밖에 없었죠.

두번째 -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 저렇게 소리지르면서 악담을 잘해?

막장 드라마에는 매회 경악할 만한 사건이 끊이질 않죠?
그러다보니 등장인물들이 바락바락 악을 쓰는 장면도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 역시 한국을 동경하다못해, 한국으로 원어민 선생님으로 가는게 꿈인 영문학을 전공한 베트남계 미국인 친구에게 들은 질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얼굴이 터져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는 거야?
맨날 복수할거야, 가만 안둘거야, 죽여버릴거야 소리만 해서 좀 무서워.

첫번째 질문보다 더 당황한 저는 정말 버벅거리면서 드라마라서 과장됐다는 똑같은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죠. 

세번째 -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인데 왜 엄마들은 다 불쌍하게 병으로 죽어?

한국식 신파 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 희생한 부모님이 불치병으로 돌아가시는 설정이죠.
한류붐에 빠진 아시안계 친구들은 로마나 파리보다도 서울에 가장 가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제 주변에도 한국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것이, 자신들의 모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고 부유해보이는 서울의 모습인데요.
그런 나라에서 젋은 사람들은 좋은 옷에 좋은 차 타고 다니는데, 왜 부모님들은 평소에 병원 한 번 못가보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불치병을 발견해내는거냐고 의아해합니다.
아이구 참나...이것 역시 드라마의 극적 소재일 뿐이라고 입 아프게 말해봤자 그다지 믿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닙니다.

요즘 솔직히 이런 천인공노할 막장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마들까지 수출이 많이 되다보니까 제가 곤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기껏 K-POP과 재밌는 오락 프로그램들덕에 좋아진 이미지가 막장 드라마들 때문에 실추되는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저희 가족들은 모두 한국 드라마를 볼 때 막장 소재가 등장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거 제발 미국 친구들이 안 봤으면 좋겠다.
저렇게 낯 뜨거워지는 드라마는 도대체 왜 만드는거야...ㅠ.ㅠ

드라마 작가님들이나 PD님들이 이 블로그를 방문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전세계 한류팬들이 한국의 거의 모든 드라마를 기본으로 섭렵하는 수준입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도 좋지만, 제발 나라 망신 시키는 드라마는 그만 만들어내셨으면 합니다.
본국에 계시는 분들, 이런 피곤한 드라마에 지치지는 않으셨는지요...
드라마와 다른, 정상적 현실세계에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