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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행동했다가 낭패본 일들 2탄

by 이방인 씨 2012. 2. 1.

 

미국에서 낭패본 사연, 전편에 스크롤의 압박으로 중단됐던 나머지 일화들입니다.

세번째 - 미국에서 경로우대 잘못 했다가...

 

한국에서 경로우대는 예절이라기보다 상식이죠.
미국에서는 도의적으로 노인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있어도, 노인공경이나 경로우대가 일반화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 날도 역시 줄 서 있다가 사단이 났습니다. (1탄을 읽으신 분들은 제가 줄 서다가 낭패본 일을 기억하시죠?)
마침 제 차례가 됐습니다.
기다리는 줄은 계산대 왼편에 있었는데, 오른쪽에서 walking aid 라고 하는 보행기구를 사용하시는 할머니가 그냥 계산대로 걸어가시더라구요.

 

이런거 말입니다.
미국영화보면 이런걸 짚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하죠.
이분들 보행속도는 아마, 거북이가 와서 "같이 걸을까?" 할 정도인데도, 필요한 곳엔 다 다니십니다.
그 할머니께선 새치기를 하신게 아니라 다만 왼편의 줄을 못 보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를 제지하지 않고, 그냥 저보다 먼저 계산하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산대 직원이 할머니께 왼쪽에 줄 선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아이고, 미안해라.

괜찮아요. 물건도 별로 없으신데, 먼저 계산 하세요.

 

하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때 줄에는 저랑 뒤에 젊은 남자 한 명, 그 뒤에 아주머니 한 분 이렇게 셋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계산할 물건이 2-3개뿐이었고, 뒤에는 다 젊은 사람들이니 당연히 이해하겠거니 했거든요.
근데, 뒤의 청년이 제게 한 마디 했습니다.

 

다 똑같이 기다리는데 왜 그래요?

네. 미안합니다. 제가 뒤로 빠질게요...

 

그리하여 할머니도, 청년도, 그 뒤의 아주머니도 다 계산하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그러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5분 될까말까라고 생각하며 제 물건을 내밀자 계산원이 또 한마디 거들더라구요.

 

누가 기다리는걸 좋아하겠어요? 특별 취급은 공평하지가 않잖아요.

 

제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의 노인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걸 납득했겠지만 저는 그 당시 고등학생일 뿐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속으로 '네네, 선진국 선진국하더니, 이런게 참으로 앞서가는 선진의식이구만요~' 이렇게 빈정거리고 말았답니다. 
 

아 참, 더 살아보니 그 청년같이 대쪽같은 공평주의(?)을 가진 미국인은 흔치 않았습니다.
친절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네번째 - 미국에서 연필 깎는 칼 사용했다가...

 

제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때는 학교에 연필깎기칼을 많이들 가지고 다녔습니다.
종이를 자를 때라던가, 미술시간에라던가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이죠.


 

 

 

아마 이런 커터칼 필통에 가지고 계셨던 분들 많았을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저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닐때도 초반에는 가지고 다녔습니다.
선생님께 걸리기 전까지는요.

하루는 쪽지시험을 본다기에, 노트 종이를 반으로 자를 일이 생겼습니다.
옆에 미국애들이 그냥 손으로 너저분하게 종이를 찢는것도 신경 안쓰고, 저는 커터칼로 종이를 잘랐죠.
그런데 앞에서 선생님 경악하시면서 묻습니다.

 

세상에! 너 이거 왜 가져 왔니??!!

왜 가져오다니요? 이렇게 쓸려고 가져왔죠....??

 

쪽지시험이고 뭐고, 저 당장 선생님과 개인면담하러 끌려갔습니다. -.-;;
다행히 제가 이민온 지 얼마 안되는 학생인건 아시니까 대충 짐작은 하셨나봅니다.

 

미국에선 이런거 학교에 절대 가져오면 안돼.  실수로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니?
나는 물론이고, 학교도 큰 문제에 빠진다. 앞으로 절대 가져오지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미국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송' 의 나라입니다.
툭하면 소송걸어 보상금 받는게 이 나라 사람들의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유명한 보상금 소송들이 여럿있죠?

1. 맥도날드에서 HOT 커피 시킨 할머니가 커피 쏟아서 데었다고 소송해서 보상금 64만불 (한화 7억정도) 받음.
2. 교도소에서 복역수가 담 너머 탈옥하려다 착지 잘못해서 팔 다리 부러졌는데, 교도소 상대로 안전장치 안해놨다고 소송해서 200만불 (한화 20억 이상) 보상금 받음.
 

물론 아무 경우에나 이런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건 아니구요.
피할 수 없는 사고가 아니라 피고측이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있는 수단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배심원들이 인정했을 경우에만 형벌적 보상금 (벌금 + 보상금) 으로 거액이 책정됩니다.
언뜻 이해가 안갈 정도로 거액인 이유는 원고에 대한 보상금은 상식 수준이지만, 피고 기업측에 부과되는 벌금이 어마어마 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에서 세탁기를 사면, '절대 아이를 세탁기에 넣지 마십시오' 라는 경고문이 써 있죠.
공공장소나 상점에서는 바닥 물청소를 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미끄럽습니다' 안내판을 놓아야하구요.
HOT 커피는 뜨겁다, ICE 커피는 차갑다 써놓아야 하고 튀김음식은 데일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해줘야합니다.
바로 이런 각종 경고들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 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이런건 너무나 당연해서 바보가 아닌 이상 말 안해줘도 알텐데...하시겠지만,
이런 경고를 하지 않으므로써, 나중에 벌어지는 사고에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물게 될까봐 미리 예방하는 겁니다.

만약 제가 커터칼을 사용하다가 '학교 안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그건 제 잘못이지만 미국식 사고로는 그건 미리 방지를 못한 선생님과 학교측의 잘못인겁니다.
제가 소송이라도 하면, 선생님과 학교는 둘 다 골치 아파지는거죠.
그리하여, 선생님과 짧은 면담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자 옆 자리 학생 한마디 하더군요.

 

우와~ 학교에 그런거(그런거라니..?!) 가져온 얘는 니가 처음이야. ㅋㅋㅋ

그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양호실에서 미성년자들한테 공짜 콘돔 나눠주고, 복도에서는 애들이 대마초를 사고 파는 한이 있어도, 커터칼은 절대 가지고 오면 안되는구나... 이제 잘 알겠다..ㅠ.ㅠ

 

1편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모두 제가 이민 온 지 1년이 채 안됐을 때 겪은 일들입니다.
책으로 배운 미국 문화를 실제로 경험하게되면 미리 공부를 했어도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은 반응속도가 느리더라구요.
차차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미국 문화를 납득하게 되었지만 이 글에는 그 당시 솔직한 제 심정을 썼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겨우 두 가지 썼는데도, 부연설명때문에 글이 길어졌네요. ^^;;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