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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단신(短信)

한동안 뜸했었죠?

by 이방인 씨 2020. 10. 27.

몇 달간 글을 쓰지 못해 여러분의 소식도 알 수가 없었는데 다들 건강하게 지내셨길 빕니다. 
저는 최근 4개월간 미친듯이 바빴답니다. 코로나와 캘리포니아 산불 탓이었는데요. 코로나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산불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어찌 바빴느냐 하시면, 그~거~슨~ 바로 제가...
캘리포니아의 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캘리포니아 자산관리국 (쉽게 의미가 통하게 옮기자면)쯤이라고 할 수 있는 기관의 Data Reporting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팀 이름에서 짐작하시듯, 데이터를 수집, 통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 업무랍니다. 평상시 저희 팀의 업무는 코로나 및 산불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 어찌하여 바빠졌느냐면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지만 짧게 줄여보겠습니다.

자산관리국에는 다양한 사업부문들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출장 다니는 공무원들을 위해 캘리포니아내 호텔들과 계약을 하여 공무원들의 숙박시설 이용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긴급출장이나 장기출장시에도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정부와 계약관계에 있는 호텔들이 캘리포니아 전역에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저희 기관이 코로나 응급대응 task force에 들어가게 되었답니다. 부연설명이 조금 더 필요하니 잠시만 더 읽어주세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의료계 종사자분들이 코로나 환자들을 위해 애쓰고 계시죠?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이분들이 환자들과 직접 대면하기에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잖아요. 그런데 근무 후에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분들의 가족들도 위험해지겠죠. 그래서 캘리포니아 정부에서는 코로나 환자에게 노출된 의료인들을 위해 무료 호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의료인들이 직장과 가까운 호텔에 머물 수 있도록 방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호텔 룸들이 필요해졌는데, 마침 저희 기관이 호텔망을 가지고 있다보니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런데 저는 호텔사업 담당도 아닌데 왜 엮였냐면요. 코로나 감염자 수가 미친듯이 널을 뛰면서 캘리포니아 뉴섬 주지사가 코로나 관련 모든 데이터 보고를 요구했습니다. 의료인들의 호텔사용 데이터까지도요. 그런데 호텔사업팀에는 데이터 인력이 없었습니다. 하여 같은 기관에 있는 저희 팀이 데이터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네요.

그 후 저희는 망연자실한 상황을 여러번 맞이했습니다. 팬데믹을 처음 겪다 보니 넘쳐나는 호텔 예약 업무에 호텔사업팀이 3교대로 24시간 풀가동하면서 들어오는 데이터의 양이 폭증했습니다. 게다가 예약을 온라인으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전화 및 수기로 작성한 서류로까지 받으면서 데이터의 정확성이 형편없었는지라 정확한 통계 및 분석이 어려워졌지요. 두어 달을 그런 데이터와 씨름하며 간신히 시스템을 정비하며 이제는 매일 업데이트만 하면 되는 수준까지 왔기에 한시름 놓을무렵...

산불이... 산불이... 세상에나....

캘리포니아 정부는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과 산불의 경로에 있어 대피해야 하는 주민들에게 또한 무료로 호텔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말인즉, 호텔사업팀과 저희는 쉴새없이 일하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현재까지 11,000명이 넘는 대피자들이 호텔을 이용했는데 그 예약 역시 긴박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데이터가 아주 그냥~ 끝내주게 엉망진창이었어요. 사실 산불피해 현황보고는 코로나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저희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및 공공위생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협력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여러곳에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dashboard가 필요했습니다. 저희 팀이 또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구요. 주말에도 스탠바이 상태로 대기하다가 연락이 오면 그 때부터 시간외 업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 전부터는 산불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숙소와 식사 마련을 위한 base camp 운영을 시작하게 되어 17시간 연속 근무를 한 날도 있네요. 사실 저는 base camp와는 정~말 관련이 없는데, 응급 대응팀으로 떠난 직원이 많아서 부서내 손이 너무 부족하여 저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닥치는대로 도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은 이들이 떠난 이들의 업무를 커버하느라 모두가 과부하 상태라 힘들다고 불평할 수도 없네요. 다행히 지난 주부터는 기관과 계약을 맺은 업체 직원들이 base camp를 맡기로 해서 모두가 한시름 놓았답니다.

근무시간이 많이 연장된 것은 물론이고 스케줄도 들쭉날쭉이다 보니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기도 하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코로나 감염자도 아니고 산불 피해자도 아니며, 현장에서 직접 일해야 하는 직원도 아닌 것에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젠 보고 시스템이 안정적이라 매일 비상사태처럼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편하네요.

이상, 한동안 뜸할 수 밖에 없었던 저희 근황이야기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2020년은 정말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별 일 없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