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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코로나 때문에 미국 회사에서 웃지못할 쌩쇼를 한 까닭

by 이방인 씨 2020. 4. 25.

마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 시국에도 단 한 번의 결근 없이 5일 내내 정상출근을 하고 있답니다. 부하직원이 편하게 집에서 일하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다는 보스 때문이죠. 저희 보스를 제외하면 재택근무를 허가해 준 다른 빅 보스들이 많아서 다행히 회사가 평상시처럼 직원들로 북적이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저희 팀 직원들 20여 명은 전부 회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새로운 확진자들의 뉴스가 들려오는 가운데, 저희 보스는 "죽어도 사무실에서 죽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지난 주에 참으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답니다.


그간 잘 버텨오던 직원들이지만 지난 주 금요일에 우연히도 두 명의 직원이 코로나 의심 증상을 보이며 심하게 아프다며 회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둘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지만 공통점은 모두 저희 보스 팀에 속해있다는 점이죠. Uh-oh! 금요일에 병가를 낸 두 직원은 그 날로 병원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의사가 결과 나올 때까지 3-5일 걸릴 거래요."


WHAT?!!!!

뭐가 그리 오래 걸려???


제가 지난 번 글에서 검사 키트가 모자라서 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드렸죠? 자, 이제 또 하나 밝혀진 것은 검사를 받아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려 3-5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네요. 


아오~ 정말 긴장감이 널을 뜁니다요.


하지만 이 사실은 매니저들에게만 전달되었고, 직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 두 명이 만약 코로나에 감염됐다면, 그래서 모두에게 밝혀야했다면, 저희 보스는 직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정상출근을 강요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겠죠. 그리고 이 두 명이 확진자라면, 회사에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 헤드쿼터에 보고할 수 밖에 없는 비상사태가 될 테죠.


그간 "누가 뭐라든 내 직원은 내 맘대로 부릴 거야"라던 보스도 일이 이렇게 되니 겁이났나 봅니다. 금요일에 두 명의 직원이 검사를 받은 뒤 토요일 아침, 저는 보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사무실에 좀 나와줘야겠어."

.
.
.

"왜죠?"


"나와서 사무실 청소하는 것 좀 도와줘. 집 가깝잖아."


그렇습니다. 저는 사무실과 5분 거리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길.


어쨌든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위하여 토요일 아침, 사무실 청소를 하러간 방인 씨. 이거슨 평범한 사무실 청소가 아님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저를 반긴 것은 마스크, 장갑,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항균소독제였습니다.


혹시나 자신이 비난을 받을까 쫄.린. 보스는 주말에 사무실 전체를 직접 소독하려 한 것입니다. 감염이 의심되는 직원들이 회사에 마지막으로 나왔던 날이 금요일이니 월요일에 직원들이 다시 출근하기 전, 주말에 사무실 전체를 청소하고 소독하자~고! 제게 제안을 하시더군요. 짧은 찰나 제 머리속에는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 스쳐지났습니다.


1. 이 상황에도 월요일에 직원들을 정상출근시킬 셈이구나

2. 전문업체에게 방역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항균소독제로 소독을 할 셈이구나

3. 이렇게 하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4.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XX, 왜 나지?


하여 지난 토요일 저는 보스와 단 둘이 10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의 모든 책상, 의자,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문고리, 손잡이, 기타 등등을 항균소독제로 박박 닦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이번주 월요일, 재택근무 허가를 받지 못한 직원들은 모두 정상출근했습니다. 사무실내 감염의심자가 2명있다는 사실과 제 보스와 제가 토요일에 항균소독제 오조오억통을 박살내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채 말이죠.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체념한 채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 오늘, 감염의심자 직원들로부터 짧은 이메일이 왔습니다.


검사 결과 나왔어요. 아니래요. 다행이죠. 하하하. 


그래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예요. Thank God.


근데, 그것과 상관없이 난 이사가야지.


여러분 신나는 주말 유후~


※ 제 글에 나오는 보스는 절.대.로. 미국인 보스를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저 이런 보스 처음 만나봐요. 정상은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