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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왜 미국인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지 못할까?

by 이방인 씨 2020. 4. 14.

러분,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여전히 정상출근중이지만 다행히 아직 무사하답니다. 증상은 전혀 없지만 글쎄요... 무증상감염인지 알게 뭐랍니까.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이곳에서는 차라리 모르는 게 속편하네요.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도 뉴스를 통해 잘 알고 계실텐데요. 제가 사는 지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증상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검사가 아니라 자가설문지만 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몇 번 전해 들었답니다. 참... 답답한 상황이지요. 그런데 한국 인터넷을 보니, 미국에서 검사받기 힘든 이유에 대해 이런 저런 ~카더라 식의 글들이 많더라구요. 그 중 하나가 "검사비가 너무 비싸서 못 받는다"였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병원에서 청구받은 비용이 가히 살인적이었다는 글도 함께 돌고 있더라구요. 몇 백만원 단위의 청구서를 보면 저라도 뜨~악~ 할 수 밖에 없는데요. 사실 이 괴담급 이야기에는 오해와 사실이 혼재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의 의료보험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많은 한국분들이 악.명.높.은. 미국의 병원비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텐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비싼 것은 병원의 청구액이지 환자의 부담금이 아니랍니다. 아시다시피 "자본주의"는 미국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런 자본주의의 국가에서 민영화된 의료보험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사기업의 최대목표는 물론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일 테구요. 보험회사가 돈을 벌려면, 의료비용이 높아져야 합니다. 병원비가 저렴하면 매달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 아플 때만 병원비를 지불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그럼 보험회사가 돈을 벌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병원, 의료장비업체, 제약회사들과 손을 잡고 의료수가를 높혀야겠죠.


그래야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에 보험에 가입할테니까요. 이 작당모의(?)는 단지 보험회사에게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병원, 의료장비업체, 제약회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나 돈 벌게 도와주면 너도 돈 많이 벌 수 있어! 이 얼마나 평화로운 win-win이니?

그러자면 서민들이 고통받는 것 따위, 우리 알 바 아니지. 더 똘똘 뭉쳐서 더 부자되자~!


이리하여 맹장수술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천만원 단위의 의료수가가 책정되는, 악덕기업인들이 살기 좋고 돈 벌기 좋은 나라 미쿡이 완성된답니다~ 짜잔!


이렇게 의료비용이 높으니, 무보험자가 큰 수술이나 치료를 요하는 병을 얻게 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가 들리는 거죠. 맞습니다. 보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그대로 살.인.적. 병원비가 청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제가 대부분의 경우 비싼 것은 환자부담금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그 이유는, 미국인의 92%는 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9월에 발표된 전미 인구조사 (U.S. Census)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응답자 기준 미국 인구의 91.5%가 1년 12개월 내내 혹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커버하는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전 해인 2017년에는 인구의 92.1%가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구요. 즉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8%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죠. 물론 숫자가 적다고 해서 무보험자가 겪는 어려움이 간과되어서는 안되겠지만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미국의 의료보험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Kaiser Family Foundation라는 의료보험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의 통계를 보니 미국인구의 50% 정도가 회사에서 의료보험을 제공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나머지 42%의 개인 보험가입자들 중 약 34%는 국가가 제공하는 보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구요. 


저는 인구의 50%에 속하는, 직장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본인 1인에게 책정된 보험료가 한달에 $730 (한화 88만원)인데 직장에서 대부분을 납부하고 실제적으로 제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한달에 약 9만원 정도입니다. 이 비율은 회사마다 다르겠지요. 또한 같은 보험회사라도 여러가지 Plan을 제공하기 때문에 각각 차이가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보험으로 병원에 가면 한 번 방문시 $15 (한화 1만8천원)을 진료비로 내야합니다. 그 밖의 보편적 검사 및 치료는 커버되어 무료인 경우가 많고, 약도 종류에 따라 무료 또는 일정 금액을 지불합니다. 물론 제가 지금껏 심각한 병을 앓아본 적이 없긴 하지만, 2년 전에 응급실에서 몇 시간 머무르며, 초음파, 혈액검사, 조직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제가 낸 금액은 $50 (한화 6만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받아든 청구서에는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싶은 금액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만 보험회사에서 지불했지요. 아 참, 그리고 911을 한 번 부른 적이 있는데, 그 비용 역시 보험회사에서 지불했습니다. 치과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얼마전에 어금니 신경치료와 세라믹 크라운 치료를 위해 치과에 문의했었는데 보내준 예상 금액을 보니 $2400 (한화 292만원)이 적혀 있었지만 제가 내야하는 비용은 $213 (한화 26만원)이었습니다. 물론 치료를 받을 때마다 무제한으로 보험회사에서 돈을 내줄 수 없으니, 보험 plan별로 1년에 보험회사에서 커버하는 액수가 정해져 있답니다. 


기본적으로 보험료 자체가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가입이 부담일 수 있으나, 일단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이라면 장기간 병을 앓거나 희귀질환에 걸리지 않는 한, 막대한 병원비로 고통받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장기간 병을 앓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도 따로 있고, 그것 또한 직장에서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보험 외에도 65세 이하 빈곤층 및 장애인들을 위한 Medicaid, 65세 이상을 위한 Medicare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있어서 프로그램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 의료시스템의 최대 피해자라고 한다면, 미국내 무보험자 8% 중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겠죠. 요컨대, 직접 보험을 들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안되는데 그렇다고 빈곤층 복지대상도 아니라서 국가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역시 미쿡스럽게 의료비 협상 또는 소송을 할 수 있답니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미국은 병원비도 흥정할 수 있는 나라랍니다. 환자 또는 환자의 법적 대리인과 병원 측이 조정 및 소송을 통해 청구비용을 낮추기도 하고, 또한 할부로 납부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지리한 공방전이 되기도 한답니다. 


바로 이러한 한계를 타파하고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 일명 "오바마케어"라는 숙원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랍니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반대를 겪었는지는 뭐 두말 하면 입 아프죠. "국민의 자유 박탈 및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비난과 함께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의 격렬한 반대로비가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케어가 도입되었지만 과연 성공이냐 실패냐는 아직도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아직 채 10년도 채우지 못했으니 결정은... 후에 역사가 해줄까요...?


오늘은 제가 보고 듣고 겪은 미국의 의료보험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또한 이 글 첫머리의 화두였던 "왜 미국인들은 코로나검사를 받지 못하는가?"에 대한 저의 대답은,

"비싸서" 라기 보다는 "없어서"랍니다.
트럼프가 뭐라고 떠벌리든 간에 대부분의 병원에는 검사 키트 물량이 없어요. -.-^


여러분 오늘도 안전한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