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 직장생활

미국 직장 은따의 조건

by 이방인 씨 2019. 11. 20.

요즘에도 한국에서 "은따"라는 말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일단 옛날 사람이기에 이 글에서는 은따라는 용어를 쓰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다니고 있는 직장의 은따 동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앞에서 할 말 다하고 뒤끝 없어 보이는 미국인들입니다만, 사실은 이들도 내보이지 않는 속내가 꽤 있답니다. 직장 동료 관계가 개인적 친분으로 이어지는 일이 드문 탓인지 특히나 직장 내에서는 마음을 꽁꽁 숨기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어지간히 친한 동료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험담을 함께 하는 경우도 드뭅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니 혹여 비밀 이야기가 새어나갈까 두렵기 때문이죠. 세계 어디나 인간의 본성이란 게 꽤 비슷해서, 험담은 안 해도 못해도 공공의 적 동료를 은근히 따돌리기도 하는데, 저희 사무실에도 이런 "은따"가 한 명 있답니다. 어제도 저는 그 동료 때문에 빡! 치는 경험을 한 터라 오늘 분노의 글을 쓰게 되었네요. 남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 미국인들이 암묵적으로 공공의 적으로 선포한 그 동료의 만행을 한 번 들어보실까요?

1. 내 시간은 천금이요, 내 일에 회사의 성쇠가 달렸노라!
일단 이 동료는 심각한 자의식 과잉 증세를 보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무척 요란스럽다는 게 문제죠. 묵묵히 매진하는 타입은 아니고, 항상 자신이 얼마나 바쁜지 자신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광고하고 다닌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회사 내 요직에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은 그냥 우리와 똑같은 동료1일 뿐입니다. 이 동료가 사람을 정말 짜. 증. 나게 하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기 시간은 금인 줄 알고 남의 시간은 X 취급한다는 겁니다. 미팅이나 점심 약속 시간에 항~상 10분쯤 늦는데, 보면 매일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을 하고 있으니 뭐라고 닦달하기도 애~매 하죠.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항상 약속 10 -15분 전에 책상에 앉아 뭔가 시작한답니다. 꼭 일부러 늦으려는 것 같달까요. 그러고선 10분 늦게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자기나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는지,  휴식시간도 없이 지금까지 일하다 오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지 계~속 설명합니다.

어제도 말이죠! 저와 이 동료는 다른 부서 직원과 외부 미팅 스케쥴이 있었습니다. 11시 반까지 미팅 장소에 도착해야 해서 11시 15분에 나가기로 했는데 , 11시 15분까지 다른 동료 자리에서 일에 관해 의논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찾아가서 "우리 이제 나가야 돼요." 했더니 "너무 중요한 일이라 그래요. 금방 갈게요." 하더군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동료는 "나갔다 와요. 나중에 얘기해도 되니까." 했는데, 이 은따는 들은 척도 안 하더라고요. 결국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11시 25분이 되어도 마칠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만나기로 한 직원이 기다리고 있을까 봐 저는 속이 타더라고요. 시간 엄수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결국 11시 28분이 되어, 제가 화를 내다시피 하여 끌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1시 45분이었습니다. 다른 부서 직원은 어색한 미소로 저희를 맞았는데, 제 동료는 자리에 앉자마자 또 그 직원을 붙들고 자기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맡은 일이 얼마나 중차대했는지 또 한바탕 시작하더군요. 

아~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납니다.

2. 부장님에게는 나만 이쁨 받고 싶어!
저희 사무실 부장님은... 여러가지 의미로 인상적인 분이십니다. 업무 능력도 출중하시지만 부하직원 못살게 구는 능력 또한 타고 나신 분이시지요. 저희 사무실 모든 직원들은 다 한두 번 씩은 부장님 때문에 사직서를 내고 싶었던 위기를 맞았을 정도로요. 자연히 아래 직원들끼리 모이면 부장님에 대한 불만사항을 조심스레 토로하곤 하는데, 이 은따 동료는 가장 적극적으로, 가열차게 부장님을 미워합니다. 공공연하게 "나 이 회사 떠나면 다 부장님 때문이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저와 다른 동료들이 달래느라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료는 3주간 휴가를 받아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동료들에게는 그 흔한 열쇠고리 하나 사오지 않았지만 예의로 여행 선물하는 문화가 없는 미국에서는 다들 서운해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부장님에게는 각종 초콜릿과 꽤 값이 나가는 기념품을 한 아름 안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저와 나머지 동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경. 멸.

요즘도 이 동료는 책상마다 돌아다니며 자신의 대. 단. 함. 을 자랑하고 다니는데, 다른 직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대부분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있지요. 부장님 때문에 이직하고 싶다는 말도 계속해대는데, 저희 모두는 이제 달래는 대신 "그래, 그렇게 힘들면 떠나는 게 맞지. OOOO 씨는 어딜까도 잘할 거야. 아무렴." 하며 부추기는 중이랍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쯤 떠나도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