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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에 회사에서 직장내 성희롱 방지 교육을 받았습니다. <Preventing Harassment>이라는 제목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직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괴롭힘" 방지 교육이었지요. 저희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이 교육을 하고 있는데 사원들을 위한 클래스와 고위직을 위한 클래스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평사원들보다 많은 Power를 가진 상급관리자들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또 통계적으로 높기 때문에 고위직들에게는 부하 직원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야 뭐 아직은 아래보다 위로 올려봐야 할 사람이 더 많은 사.원.인 관계로 동료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을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첫째 - 가해자의 의도 따.위.는 중요치 않다!

성희롱이나 언어폭력의 가해자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변명이 바로 이거죠.


"아니, 난 그런 의도가 절대 아니었다구요! 어떻게 그 말을 그렇게 듣나?
이거야 원...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네!"


가해자가 이렇게 나오면 피해자는 억울한 한편 '내가 정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내심 확신이 없어지기도 하죠. 그러나 저희 회사의 성희롱 방지 교육 담당자는 단호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말하는 사람의 의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이 불쾌하다면 희롱이고 폭력입니다.


둘째 - 가해자의 성별도 중요치 않다!

흔히들 성희롱이라고 하면 남성이 가해자일 거라는 짐작을 많이 하죠? 물론 통계적으로도 그렇긴 합니다만 여성도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남자 직원이 여자 직원에게 성적 농담을 하거나, 아래 위로 훑어 본다든지, 신체 접촉을 한다든지 하면 당장 난리가 나겠죠? 그 반대로 마찬가지입니다. 여자 직원이 남자 직원이 싫어하는 발언을 하거나, 신체를 쳐다보거나 만지는 행위 또한 엄연한 성희롱이죠.

미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래 연배의 사람을 "Honey" "Dear" 등등으로 친근하게 지칭하는 경우가 흔한데 주로 나이 많은 여성들이 아래 사람을 그렇게 부르길 좋아합니다. 저희 회사에도 저를 "허니"라고 부르는 선배 여직원들이 계시죠. 저야 그 선배들이 애정을 가지고 그렇게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또 같은 여자끼리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지만 젊은 남자 직원들 중에는 그런 호칭을 거북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엄마 뻘되는 마음씨 좋은 여선배라고 해도 원치 않는 사람에게 그런 호칭을 쓰는 것 또한 성희롱이 될 수 있으니 마땅히 주의해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전해 들었답니다.


셋째 - 95%는 말하면 해결된다!

성희롱 교육 담당자의 말을 들으니 미국내 통계를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싫다"는 의사를 밝히면 가해자의 95%는 불쾌한 언행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95%는 꽤 고무적인 수치 아닙니까? 가해자가 정말로 희롱의 의도 없이 말했다가 피해자의 반응을 보고 깨닫고 그만둔 것일 수도 있겠고, 혹은 미국에서 직장내 성희롱은 해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강하게 나가니 속된 말로 '쫄아서' 그만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100명 중 95명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 성희롱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입니다.


넷째 - 5%를 기록과 증거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95%는 말로 해결했는데... 그래도 멈추지 않는 나머지 5%의 잡것들은 어쩌면 좋을까요? 방법은 사랑과 정의가 아니라 기록과 증거입니다.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했는지 매번 기록해 둬야 합니다. 직장내 성희롱 및 괴롭힘으로 보고/고발할 때 입증할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가해자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등의 뻔뻔한 변명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지.속.적.인. 희롱의 기록들이 처벌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속상하다, 괴롭다, 죽고 싶다' 이런 주관적 심경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으로 정확한 날짜 및 시간, 상황, 문장, 단어 등등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좋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그런 기록을 토대로 소송을 하여 승소하여 막대한 보상금을 받은 판례도 있다고 하네요.


2시간 30분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중년 남자 선배 두어 분이


"옷이 잘 어울린다는 말도 하지 말라 하고, 화장이 예쁘다는 말도 하지 말라 하니,
참 나.. 이 말도 못하고, 저 말도 못하고, 그럼 입을 꾹 닫고 살라는 거야?!"


하며 볼멘소리를 하더라구요. 그 분들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젊고 잘생긴 남자 직원한테는 
이 말(옷 칭찬)도 듣고 싶고 저 말(화장 칭찬)도 듣고 싶은데!



아... 나란 녀석
엉큼엉큼하도다.
.
.
.
.
.

앞.으.로.도. 화.이.팅.
(응?! 대체 무엇에? 어떻게?!)

여러분, 신나는 월요일 



 

  1. 일본의 케이 at 2015.02.09 08:48 신고 [edit/del]

    싫다고 확실히 얘기하고,,,그 다음은 철저하게 아주 상세하게 적어 둬야겠네요.

    잘 계시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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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ision2real at 2015.02.09 11:16 신고 [edit/del]

    그러고 보니,
    여자 직원 입장에서는 이 말도 듣고 싶고, 저 말도 듣고 싶을 수 있겠군요.
    호오...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군요.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무관심한 것도 비매너라
    헤어 스타일이라도 바뀌면 일부러 아는 척 해 줘야 할 때도 있는데
    자칫 말 잘못했다간 성희롱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도 있죠.

    어쨌든,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근데, 대체 무엇에? 어떻게 하시려구요?) ^^;;

    Reply
  3. 존사모님 at 2015.02.09 15:05 신고 [edit/del]

    상당히 유용한 교육이네요
    저런 교육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경각심이 생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으면 좋겠어요^^

    외모에 대한 칭찬은 아 오늘 예쁘네 정도면
    괜찮은데 특정 부위를 보면서라던가 아래 위로
    막 훑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 성희롱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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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들꽃처럼! at 2015.02.09 15:08 신고 [edit/del]

    어느새 새 포스팅이!

    머릿 속 생각 정리 쫌 하고요~~
    삼천포 댓글 쓰다가 중지했거든요~~~

    방인님 방인님
    반가워요~~~~
    궁금해 죽는줄 알았쪄요~~~
    근황 쫌 알려줘봐봐요~~
    오겡끼 데스까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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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솜사탕 가득히 at 2015.02.09 20:50 신고 [edit/del]

    정말 오랜만에 댓글을 쓰네요.
    방인님 감사합니다.
    미국에서는 방지교육을 하는군요.
    나쁘지 않은 칭찬은 괜찮을것도 같은데
    그게 어떤거에 따라 다르겠죠.
    리뷰 잘보고 갑니다.
    추신 저 지나가다 예요.
    계속 쓰던 이름을 쓸수 없어 바꿨어요.

    Reply
  6. 프라우지니 at 2015.02.09 22:59 신고 [edit/del]

    실제로 의도하지 않은 성추행의 가해자도 탄생할거 같습니다. 정말로 추근이 아닌 관심일수도 있는데 말이죠. 하긴, 받아들이는 입장이 불쾌하다면 하면 안되는 행동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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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AKA 맴매 at 2015.02.11 04:21 신고 [edit/del]

    제가 언뜻 들어도 성추행과 아닌것을 구분하기는 정말 애매하고, 오직 중요한것은 피해자의 기분인데, 이 피해자의 기분이라는 것이 언제라도 조작될 수 있는 것이라 아예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치지 않는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 직장에서는 외모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것 같아요..
    가끔씩 법인장님이 예의상 이쁘게 입고왔다든지 한마디씩 하시긴 하는데 정말 누가봐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으면 섭섭할까봐 던지는 말인게 티가 나서 그닥 아무도 신경 안쓰는듯 해요.
    전 개인적으로 그런 말 듣는 것도 싫고 하는것도 잘 못합니다만..
    사실 변화에 워낙 둔감해서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있구요.. ^^;;
    어쨌든 모든 사람이 적당한 친근함과 적당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이 좋은것 같네요..

    Reply
    • 들꽃처럼! at 2015.02.11 20:14 신고 [edit/del]

      제가 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최근에야 깨달았답니다.
      바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거요...
      그것때문에 최근 속상한 일이 있었지만 넘어가고... 에잇!

      암튼 저 같은 사람한테는 성희롱 했다 큰일날꺼예요~~
      이럴땐 성희롱은 상상도 못하게 생긴게 참 다행이네요~~~

    • AKA 맴매 at 2015.02.12 01:51 신고 [edit/del]

      저도 성희롱을 상상도 못하게 생긴 사람이라 혼쭐을 내줄 기회가 없네요 ㅋㅋ
      제 직장에서는 성희롱은 없는데 일흔이 넘으신 고문님께서 종종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십니다...
      제 부모님 연배이신지라 저 세대 사람들에게 뼈속까지 박힌 생각은 어쩔수 없겠거니하고 넘어가게 된답니다...
      어짜피 실질적으로 회사 전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시는 분이라 못들은척 해도 무리가 없거든요 ^^
      연세가 그리 들었어도 와이프도 미국분이고 미국에 사신지 50년이 되었는데 어찌 그러신지.. 흠흠....

  8. 일본시아아빠 at 2015.02.11 16:07 신고 [edit/del]

    오랜만에 다녀갑니다~
    여전히 이방인님의 글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것 같아요 ㅎㅎ
    (저도 엉큼엉큼 해서 그런걸까요? ㅋㅋㅋㅋ)
    잘 지내시는 것 같아 이것 저것 구경하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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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콩양과함께 at 2015.02.11 22:28 신고 [edit/del]

    95프로는 말로 해결 된다니..
    싫으면 싫다고 꼭 말을 해야하는군요.
    대화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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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쪼쪼선생 at 2015.03.10 18:48 신고 [edit/del]

    저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아니라고 발뱀만하다가 정확한 장소 시간 날짜를 제시하니
    결국 인정하더라구요. 5%가 더더더 훨씬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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