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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미국 시간으로 11월 26일 수요일 밤 9시 35분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원래 오늘은 글을 쓸 계획이 없었지만 몇 시간 전에 제게 일어난 아주 멋진 일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이곳에서는 11월 27일부터 4일간 Thanksgiving 연휴가 시작됩니다. 미국 최대의 명절이기도 하거니와 나흘씩이나 쉴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수많은 미국인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날이죠. 저 역시 10월 말부터 달력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곤 했답니다. 이쯤되면 수요일에 일터에 나간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지 않습니까? 빨리 퇴근하고 집으로 달려갈 생각에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죠. 심지어 아예 월차를 쓰고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랍니다.

 

 

그러나 성실한 하느라 출근한 이방인 씨는 연휴 전에 몇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5시 15분에야 (15분이나 지체하다니!!) 책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5시 25분에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하는 방인 씨, 서둘러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하.필. 아는 사람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서로 안부를 묻고 Thanksgiving 계획 이야기도 나누다 헤어지니 아뿔사! 제가 타고 있었어야 할 버스는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죠. 평소 방인 씨가 통근할 때 타는 버스는 같은 지역을 오가는 네 가지 노선이 있는데 각각의 버스는 1시간에 1대씩 운행합니다. 말인즉, 저는 1시간을 기다려야만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탈 수 있는 거죠.

아아~ Thanksgiving 이브에...
이 춥고 어두운 날에...
정류장에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아아~ 이런 망할...
오늘 출근하는 게 아니었는데...

 

근로인 코스프레를 하며 출근해버린 제 자신을 맹렬히 미워하고 있던 찰나 눈 앞에 다른 노선의 버스가 보였습니다. 네 노선이 모두 저희 동네로 가기는 하나 각각 East, West, South, North 방면이기 때문에 평소에 타던 버스가 아니라면 어디에 서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1시간을 서서 기다릴 수가 없다고 판단한 방인 씨, 눈에 보이는 그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어쨌든 같은 동네로 가니까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내려서 걷거나 혹은 식구들에게 전화해서 pick up을 부탁할 요량이었죠.

그렇게 25여 분을 달려 드디어 버스는 제가 사는 동네로 진입했지만 저희집에서는 꽤 먼 곳으로 운행하더군요. 스마트폰으로 버스 노선도를 검색하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려도 한 15분은 걸어야 할 것 같았어요. 깜.깜.하.고. 추.운. 저녁에 말이죠. 어쨌든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까지 타고 가는 와중에 다른 승객들은 하나 둘 내리고 저.만. 혼.자. 남았더라구요!! 버스 안에 혼자 남았을 때 조금 불안해져서 다른 버스를 타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기사 분께 여쭤 보았습니다.


"저는 OOO길에 가려고 하는데 어디 쯤에서 내리는 게 가장 좋을까요?"


했더니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 기사 분이 지도를 보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대충 알 것 같길래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내릴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기사 분이 버스 안에 달린 무전기를 집어들더군요. 버스 노선 및 운행을 관리하는 컨트롤 센터와 통신할 수 있는 무전기에 대고 그녀가 한 말은,


"OOO 노선 제시카입니다. 지금 마지막 승객 1명을 태우고 있는데 이 손님이 원래 타던 버스를 놓쳐 내 버스를 대신 탔다고 하네요. 난 이제 정류장 하나만 지나면 차고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전에 이 손님을 집까지 데려다 줘도 될까요?"

 

허엇~!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이까~?!!!
집까지 데려다 주신다굽쇼?!!


무전 내용을 듣고 제가 놀라고 있을 때 무전기를 통해 컨트롤 센터의 간단명료한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YES

허엇~! 그래도 된다구요???
다들 친절친절 열매를 드신 것일까?!!!


무전기를 내려놓은 Jessica는 밝은 목소리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컨트롤이 허락하지 않아서 당신이 이 저녁에 걸어가야 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데려다줘도 되냐고 물어보면서 속으로 손가락을 꼬고 있었어요. 하하하하."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는 건 이런 제스쳐를 말하는데 꼭 이루어지길 바라는 일을 빌 때 미국인들이 하는 행동이랍니다.

 

 

그러니까 제시카는 저를 꼭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에, 혹시 통제센터에서 안된다고 할까 봐 마음을 졸이며 속으로 빌었다는 거죠.

 

뭐...뭐지? 이 분 설마   추수감사절의 정령 이신 건가?!!!


저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너무 죄송해서 근처 아무데서나 내려주면 된다고 사양했지만 제시카는 "이 버스는 이미 운행이 끝났으니 괜찮다고"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닙니까. 해서 저는 급기야 말까지 더듬으며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운행 스케쥴을 6시 5분에 다 마친, 원래대로라면 차고로 돌아가고 있었어야 할 제시카는 6시 14분 경에 저를 저희집 코. 앞.에. 내려주었답니다. (제가 원래 타는 버스도 그렇게 가까이는 안 서요!) 평소 자신이 운행하는 노선을 벗어났기 때문에 길이 눈에 익지 않아 헤매느라 가까운 길을 돌아와서 미.안.하.다. 하며 말이죠.


이 분 정령에서  Angel 로 격상 확정!
여자라도 괜찮다면 날 가져요. 엉엉엉


연휴를 앞두고 제가 그토록 집에 빨리 오고 싶었던 만큼, 제시카 역시 1분 1초라도 빨리 차고로 돌아가 퇴근을 준비하고 싶었을 텐데도 끝까지 웃으면서, 너무 황송해하고 있는 제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It's okay. No problem."을 반복하더군요. 저는 버스에서 내릴 때 90도 인사까지 할 지경이었답니다.

자, 그리하여 이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나흘 간의 황금연휴를 앞두고 괜~히 출근을 했다.
2. 5시에 칼퇴근해도 될 것을 괜~히 번잡떨며 15분을 더 머물렀다.
3. 길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 만고에 쓸모 없는 수다를 떨었다.
4. 그 결과로 버스를 놓쳤다.
5.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무 버스나 탔다.
6. 춥고 어두운 저녁에 한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7. 이쯤에서 천사가 강림하시어 추수감사절의 기적을 행하셨다.

8. 정신차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9. 와구와구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루이, 당신 말이 맞았어.

What a wonderful world~


늦은 저녁 제가 겪은 어느 달콤한 친절을 전해 드리며 이만 물러갑니다.
여러분도 wonderful day, 유후~

추수감사절 맞이 '근본 없는 요리'가 월요일에 여러분을 습격!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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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함수 at 2014.11.28 11:30 [edit/del]

    와우 정말 친절하신 분인데요
    미국에 살기시작하며 참 다른 세상이다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이런 미담을 들으니 제 기분이 다 좋아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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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존사모님 at 2014.11.28 12:02 [edit/del]

    Happy Turkey Day!!!!

    세상에! 너무 훈훈한 이야기네요
    땡스기빙의 작은 기적이었나봐요
    제시카씨는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멋진 사람이네요
    저도 가끔은 저런 괜찮은 사람이 되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월요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근본없는 요리를
    보러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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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개군 at 2014.11.28 13:14 신고 [edit/del]

    저도 학교에서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다니는지라 수업 끝나는 시간 잘 못 맞추면 버스를 놓쳐버려서 그냥 집까지 무작정 걸어갈때가 많아요.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거의 1시간은 걸리지만 스마트폰으로 노래 들으면서 가다보면 금방가게되서 그리 길지는 않게 느껴져요^^ 수업이 밤늦게 끝나서 버스가 끊겼을때는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데 그런날들은 걸어가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아니면 가끔 보름달이 뜰 때면 아주 밝아서 밤에 걸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ㅎㅎ

    Reply
  5. at 2014.11.28 13:28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Reply
  6. 시도 at 2014.11.28 15:30 [edit/del]

    만고에 쓸데없는 수다..ㅋㅋㅋ

    고인이 되신 이모님이 종종 쓰시던 단어네요.. "만고에~~~"

    타인에게 선행을 베푼 그분은 당연히 고마운 분이지만,
    이렇게 고마워하는 방인님도 고마운 사람인거 아세요?^^

    종종.. 뭘 기대하고 은혜를 베푸는 건 아니지만, 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들 보면..
    내가 바보였어...................하고 후회하게 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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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콩양 at 2014.11.28 15:35 [edit/del]

    흠.. 댓글을 남기고 싶은데,,
    금칙어가 들어 있어서 글을 남길 수가 없다네요.
    몇몇 단어를 바꿔 봤는데,, 그래도 안된대요ㅜㅜ
    멋진 분들을 만나셨네요~

    Reply
  8. 떡수이 at 2014.11.28 18:31 신고 [edit/del]

    정말 천사시네요.

    Reply
  9. author-sooyoung at 2014.11.28 18:36 신고 [edit/del]

    콘트롤에서 YES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제 마음이 뭉클 따뜻해지네요~ 제시카 같은 분들이 계시니 아직까지 세상 그래도 살만 한거겠지요. 오늘 따뜻한 이야기 덕분에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이어지는 연휴 잘 보내시고요~ 월요일 포스팅 보러 올께요~^^

    Reply
  10. at 2014.11.28 18:57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Reply
  11. 숨은 애독자 at 2014.11.28 20:16 [edit/del]

    운전기사분이 남자였으면 완벽한 스토리였을텐데.. 쪼끔 아쉽네요 아주 쪼끔이요

    Reply
  12. at 2014.11.29 00:14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Reply
  13. 역량 at 2014.11.29 01:28 [edit/del]

    제가 어릴 때 그러니까 80년대 말쯤,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자다가 깨보니 저만 덩그라니 남았을 때 기사 아저씨가 집 앞 정류장까지 다시 데려다 줬었어요. 오빠도 모형비행기 날리기 대회 나갔다가 없어졌는데 그 날 저녁에 군인 아저씨가 데리고 왔었구요. 90년대에도 언젠가 한 번 제가 옆 자리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는데, 결국에는 버스 안 모든 아주머니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결국 제가 어디에 내려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준 적도 있었구요.

    지금은 좀 세상이 무섭잖아요. 그 때가 그리워요.

    Reply
  14. 맴매 at 2014.11.29 04:27 [edit/del]

    가슴이 따뜻해지는 얘기네요...
    정말 소설속에서나 나올것 같은 얘기들이 방인님한테 생기는걸 보면 정말 착하게 잘 사셨나봐요...
    즐겁고 행복한 추수감사절 보내셨길 바래요~~~

    Reply
  15. 별빛이 내린다 at 2014.11.29 08:44 [edit/del]

    제시카라는 이름이 요즘 한국에서는 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쪽 제시카는 참 천사네요 ㅋㅋ
    걍 행인이 길을 안내해주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친절인것 같아요.
    울나라 버스 운전기사들한테서는 정말 찾을래야 찾을수 없는 행동이네요.


    예전에 밤 늦게 택시를 타고 집에 간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술취한, 거의 아버지뻘 되시는 중년의 아저씨가
    합승을 했는데요... 그 아저씨가 나를 보자마자 젊은 아가씨가 밤 늦게 택시타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하시더라구요. 뭐... 울 아버지 같은 느낌도 있었고 술도 많이 취한것 같아서 걍 "네, 네" 하고 듣고만 있었는데 내가 내릴쯤에 그 아저씨가 자기가 대신 계산해 준다고 하는거예요. 그아저씨는 좀더 가야 되는 상황이였는데 본인이 내 택시비까지 내준다고 저보고 걍 내리라고 하더라구요

    나는 속으로 "오잉...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데
    갑자기 택시기사가 그런게 어딨냐고.. 자기가 내야 할건 자기가 내야 된다고 그 아저씨를 막 만류하시는 통에 결국 내돈으로 택시비 주고 내렸다는..ㅋㅋㅋㅋ
    좋다 말았어요..ㅋㅋㅋㅋㅋㅋ

    Reply
  16. 넘버원 at 2014.11.29 13:12 [edit/del]

    가슴깊은곳에서 울컼 감동이 밀려올라오네요~~ 이럴때 쓰는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Reply
  17. at 2014.11.29 18:25 [edit/del]

    오호~ 감동적입니다~^^
    전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될 수 있단 걸 믿습니다!!
    그래서 고된 삶에서 가끔 사람들이 '살맛 나는 세상'을 외치는 가 봅니다.
    방인님, 즐겁고 행복한 추수감사절 보내세요~
    훈훈함 감동 스토리 감사합니다^^

    Reply
  18. Selene at 2014.12.02 19:21 [edit/del]

    우연히 들렸다가 아직 캘리가 살만하구나 하는걸보고 댓글답니다... 혹시 수퍼바이저나 회사한태저나하셧는지요? 너무친절햇다고 나의 연휴를 살렸다고라도.. 그분에게 도움이될수있도록이요!

    Reply
  19. 어린 아이 at 2014.12.05 03:36 [edit/del]

    와! 방인 님은 진짜 복이 많은 것 같아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다니~ 추수감사절의 기적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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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jh at 2014.12.10 23:10 [edit/del]

    저도 3년전에 플로리다 갔을 때 며칠간 버스타고 다녔던 적 있는데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없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니까 얼굴 익힌 여자기사님이 버스비 받지 않으시고 가장 가까운 정류장까지 태워주셨던 게 생각나네요 ㅎㅎ그때 되게 놀랐었는데 ㅎㅎ 이 글에 뭔가 공감이 가 글을 남깁니다^^ 이방인님 블로그 거의 시작하실때 저도 이 블로그를 알아서 자주 봤었는데 댓글은 처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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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kiki09 at 2015.01.08 22:59 신고 [edit/del]

    와우~~~!
    정말~~~
    멋진 분을 만나셨네요!!!!
    저 같았어도 90도 각도로 인사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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