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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오후 퇴근 무렵, 우리 동네에서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한 부부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 40대 중반의 부부는 매일 출퇴근 길에 이렇게 손을 꼬~옥~ 잡고 다닙니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도 아니고, 함께 산전수전 다 겪어 동지애가 쌓인 황혼도 아니 건만, 뭐가 그리 애틋한지 손을 놓는 법이 없습니다. 심지어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캘리포니아의 한여름에도 손을 잡고 걷더라구요.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20년째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즉, 이 부부는 거의 24시간 내내 붙어 있다는 거죠. 한순간도 옆에서 사라지질 않는 배우자에 지칠 법도 한데 이들은 언제 봐도 '암수 서로 정다운 꾀꼬리 한 쌍'이랍니다. 비단 이 부부 뿐만 아니라 미국에는 깨가 쏟아지는 중/노년 부부들이 많더라구요.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로 백발 성성한 노부부가 여전히 키스를 하며 틈만 나면 "사랑해" "나도 사랑해"를 속삭이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애정표현을 남사스럽게 여기는 한국인들과 달리 신체접촉이나 감정표현에 거침 없는 미국인들이라 늙어서도 부부 사이가 저리 좋은가 보다 생각했었는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으셨습니다.


미국의 중년/노년 부부들이 사이 좋은 건
자식들
떠나 보내고 둘만의 삶을 살기 때문이야.


어머니 말씀인 즉, 성인이 된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게 당연한 한국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자녀가 독립해서 나가면 그 때부터는 온전히 부부 둘 만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단 둘이 삶을 공유하는 시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뜻이죠.

물론 모든 미국 자녀들이 만 18세가 되면 집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독립한다고 해서 부모와의 교류가 끊기는 것도 아니지만 부모의 인생에서 자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 주변에도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사는 미국인 친구들도 있고, 부모와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성년이 되고 정신적으로 독립할 시기가 지나고 나면 부모님과 가까이 있다고 해도 독자적인 삶을 사는 게 보통이더라구요.

얼마 전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아주머니가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요리 학교에 다니시는 덕분에 같은 버스를 타고 오면서 한 20분 간 수다를 떨었는데 아주머니에게는 24살, 22살의 두 딸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즘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빨리 집 떠나 독립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대요. 딸들과 한 집에 사시는 게 불편하시냐 어쭈었더니 이런 대답을


난 내 아이들을 좋아해.
하지만 이제 그 아이들이 날아갈 시기가 됐어.
난 다시 나만의 인생을 살 준비가 됐거든.


죽는 날까지 자식들을 위해 사는 부모님들이 여전히 많은 한국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고백이죠? 미국에서 15년을 사신 저희 부모님도 부부 두 분의 삶보다는 자식들을 포함한 4인 가족의 삶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다 서른을 넘겼는데도 놀러갈 때 같이 가고 싶어하시고, 일요일에는 꼭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하시는 저희 아버지와 아직도 자식들의 모든 일을 당신 손으로 해 주고 싶어하시는 본능(?)이 강하신 저희 어머니를 보면요.


자식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그러신 건지,
부부 단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본 지 너무 오래라 어색해서 그러시는 건지 원...


아직도 저를 보살펴 주시는 어머니를 보면 죄송하기도 하고, 어머니도 자식들 말고 다른 관심사를 가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막상 저희 부모님이 미국 부모님처럼 So So Cool~ 하게 "이제 내 인생은 나의 것,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Good Luck~" 하시면 은근히 서운할 것 같아요.

여러분의 생각은???

신나는 한 주의 시작,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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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t 2014.11.03 20:31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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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랑랑 at 2014.11.03 20:32 [edit/del]

    우리부부도 저렇게 살아요~~~주이에선 닭살돋닌다지만..아이들이 얼른 독립해야 되렌데...

    Reply
  4. 하시루켄 at 2014.11.03 22:24 신고 [edit/del]

    아... 손주 봐달라고 부모님께 부탁드리는 제가 부끄러우지네요.
    부모님도 부모님 인생이 있는건데 평생 자식키우고 손주들까지 봐달라고 하니...
    무지하게 죄송스런 마음이 드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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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안개비 at 2014.11.03 22:53 [edit/del]

    방인씨 글은 언제나 재밌게 읽고 있어요.
    미쿡서 오래 살았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화법은 인터넷환경때문이겠죠? ㅎㅎ참 가깝고도 먼 지구촌입니다.
    결혼전 공원에서 외국인부부를 봤는데 둘은 어깨동무하고 가고 뒤에 3~4살 꼬마가 혼자 씐나게 따라가더라구요. 그 모습보면서 나도 부부중심으로 살겠다 마음먹었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자꾸 5살배기 아이한테 의지하게 되고ㅠㅜ
    에휴~~방인씨는 결혼전 예비신랑과 충분히 가치관을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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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지나가다 at 2014.11.04 01:38 [edit/del]

    사이안좋은 부부는 주저없이 이혼하니 이혼안한 부부는 사이가 좋은것 아닐까요? ^^;

    Reply
  7. KL at 2014.11.04 07:58 [edit/del]

    좋은 글이네요. 사회가 바뀌어 가니까 우리도 바꾸어야겠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

    Reply
  8. aquaplanet at 2014.11.04 09:03 신고 [edit/del]

    공감이 가면서도 어려운 내용이네요~
    그래도 보기 좋은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할 것들이 많습니다.

    Reply
  9. 모아멤므 at 2014.11.04 12:21 [edit/del]

    우연히 들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두아이, 특히 두 아들의 엄마로서 항상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을 염두해두고 될수 있으면 독립적인 아이들로 키우려고 하지만, 순간순간 여느 한국 부모처럼 집착하는 제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한국에는 제 주변 제 윗분들...고부간의 갈등...부부간의 문제들..특히 여성이 일을 하면서 오는 갈등들이 지금 위에서 말씀하신 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직도 아이들과 본인의 인생을 죽을때까지 함깨하고픈 존재라고 또 베푼만큼 늙으면 받아야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제 주변도 부부의 삶에 중점을 두고 바뀌고 있습니다..사정으로 현재는 본의아니가 expats생활을 하고 있어 유럽. 동남아. 남미. 북미등 외국인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역시 아이들도 너무 사랑하지만 부부의 삶에 많은 중점을 두고 사는 것을 봅니다. 자식에게 인생을 희생하는 모습보다 자신있게 본인의 인생을 즐기려는 행복한 모습이 어쩌면 자식들에게 훨씬 긍장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어머님이 나가라고 하면 서운할 수도 있겠다라는 대목에서..저번에 저희 아들이...아들의 꿈이 너만 행복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어떤거여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고서 아들이 어떻게 상관이 없냐고..다른 부모는 안그런다고 다 기대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이라서 이렇게 댓글 쓰고 갑니다...재미있는 블로그 종종 와서 좋은글 읽고 가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Reply
  10. 존사모님 at 2014.11.04 14:01 [edit/del]

    박여사님의 해석이 참 일리 있네요
    저는 지금도 자식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인데
    남편과 오손도손 잘 살 수 있도록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야겠어요

    확실히 저희 남편은 어디를 가도 무슨 모임이
    있어도 부부동반이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긴 해요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어요
    서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Reply
  11. 들꽃처럼 at 2014.11.04 14:33 [edit/del]

    방인님의 선물을 방금 막 받았답니다.
    덜그럭 덜그럭 뭘까?하며 뜯어보았지요~~~
    우와~~~
    울 비키 난리 났답니다!
    완죤 방인클로스였어요!!!!
    뭐였냐면?
    Danger~~~
    미국산 각종 초콜릿이었어요~~~
    흐흐흐흐흐흐

    방인님~~감사해요~~~~
    글고 민트만 초콜렛 전 맛나던데요?
    왜 싫어하셨을까나?
    근데 돈주고 사먹을꺼 같진 않어요~ ^^

    아이 좋아라~~~~
    부러우신가요?
    그럼 댓글을 열심히 다세요~~~

    Reply
  12. 황금비 at 2014.11.05 00:54 [edit/del]

    미국에 10년 살아보니 미국인들이 자식을 팽개치는 느낌이 들어요 마약하는 데도 모르고 있고 글쎄요 자식이 결혼하고 그리고 부부가 즐겼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당.

    Reply
  13. 맴매 at 2014.11.05 06:10 [edit/del]

    한 포스팅에 댓글 두 개 달기 시전! ^^;;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분이 다 살아계실때는 문제가 별로 없는데, 한 분이 돌아가셔서 다른 한 분이 혼자 남으셨을때인것 같아요...
    미국사람들은 그런 경우에도 자식들이랑 다시 같이 살거나 하지는 않는것 같던데...
    한국사람들 맘은 그렇지 않을것 같아요...
    부모쪽에서도 외로워서 섭섭할 것 같고, 자식쪽에서 좀 많이 찔려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오래 따로 살다가 같이 살려면 불편하긴 할테고...
    호오 이건 또 생각해봐야 할 문제네요...

    Reply
  14. FKI자유광장 at 2014.11.05 09:54 신고 [edit/del]

    그렇네요. 납득이 가요. 잘 읽고 갑니다 :)

    Reply
  15. 프라우지니 at 2014.11.07 03:30 신고 [edit/del]

    저의 시부모님도 항상 두분이 함께하십니다.

    Reply
  16. 미국부부 at 2014.11.09 16:33 [edit/del]

    미국은 부부가 결혼할 때 한국보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기능을 중요시하고, 한국은 개인보다 아직은 집안과 집안이라는 느낌이 강할 정도로 양쪽 특히 시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데다 한창 자신에게 맞는 이성을 탐색할 청소년, 청년기에 공부나 일이 우선시되는 문화라 막상 결혼할 때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외모나 조건을 보고 배우자를 고르는 미숙함이 있어서 미국만큼 사이좋은 부부가 나오기 더 힘든 것도 있습니다. 미국은 확실히 아이들 키울 때 부부만족도 뚝 떨어지지만 아이들 독립할 나이쯤 되면 신혼과 비슷할 정도로 부부만족도가 올라 가더군요. 한국도 비슷하지만 결국은 결혼배우자 조건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미국은 자식때문에 참고 산다는 부부가 한국보다 적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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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at 2014.11.10 14:59 [edit/del]

    서른을 훌쩍 넘은 두 남매를 아직도 건사하고 계신 우리 부모님..도 결국,
    미쿡인 부모님들과 같은 마음을 한켠에 가지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문득 제 마음이 무겁네요..ㅜㅜ
    내년엔 꼭 독립하리라~
    남동생은 얼른 장가보내리라~
    맘처럼 안 되는 현실을 발로 쿵쿵 차며 잠시 발버둥쳐봅니다,만
    결국 올해처럼 제자리일까 사뭇 두렵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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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린지 at 2014.11.10 17:09 [edit/del]

    와..부모자식간에 저런 쿨함이 너무부럽네요. 저희부모님은 아직도 자식을 품에서놓질않고 이리저리 간섭하고 자꾸같이다니자고 하시니 ..서양의 저런사고방식을 좀 배우셨으면 좋겠네요ㅋㅋ 이글을 엄마한테 보여드려야하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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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라비 at 2014.11.16 13:15 [edit/del]

    뚱뚱하고 여성적 매력을 찾기도 쉽지않은 여자들을 모가 그리 이쁜지 손 꼭잡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미국 남자들 많더라구요..내눈에 이쁘고 사랑스러움 되는건데...한국은 결혼하고 나이먹고 아내가 조금만 안꾸미고 살찌고하면 같이 외출도 잘 안하고 손잡고 팔짱끼고..거의 그런 모습이 안보이는듯~~이유가 뭘까??남의 눈때문에 그런가??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지키는 사람이 가장 사랑스럽고 귀중한 사람이라는거 잊지말고 살아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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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얼래 at 2014.11.23 07:38 [edit/del]

    부모가 자식을 쫓아다니는 게 다 큰 자식이 부모를 계속 쫓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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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초코꽃 at 2014.12.19 02:28 신고 [edit/del]

    부모님과 같이 살지만 부모님 두분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 해드리려고 합니다 ㅎㅎ 뭐든지 균형잡힌 관계가 제일 건강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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