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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자식 때문에 뒷목 잡고 싶어도 쿨해야만 하는 미국 부모들

by 이방인 씨 2014. 10. 10.

늘 저는 무려 35분 동안이나 미국인 지인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답니다. 그 분은 아직 50대 초반이지만 결혼을 일찍 하여 22살에 낳은 첫 딸이 올해 29세입니다. 그 스물 아홉 된 딸이 약 1년 전에 첫 딸을 낳았지요. 그렇다면 제 지인이 생애 처음으로 얻은 손녀가 곧 돌을 맞이하니 매일이 즐거워야 마땅할 텐데 무슨 하소연이 그리 길까요... 이야기만 전해 들어도 뒷목 잡고 싶어지는 그녀와 그녀의 딸의 이야기 한 번 들어보세요.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그녀는 독실하고 엄격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고, 마찬가지로 유럽계 이민자 후손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낳은 딸도 착실하고 얌전하게 키워 여느 미국 아이들과 다르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공부도 썩 잘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러던 중이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는 놈.팽.이.를 만난 겁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고, 미래도 딱히 없어 보이는 남자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석사 과정을 중도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 두더니 당장 살림을 차리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부터 덜컥 가진 거죠. 제가 누누히 말씀 드렸다시피 미국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꽤 많은데, 제 지인 부부가 바로 그러합니다. 박사 학위를 딸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곱게 키운 딸이 그런 남자를 만나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지인과 남편은 충격으로 쓰러질 지경이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타 주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딸이 그 남자를 만나고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지 부모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거죠. 아이를 가지고 난 후에야 더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뒤늦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너무 놀란 제 지인 부부가 당장 딸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보니, 세상에 세상에... 그 남자는 천하에 둘도 없을 것 같은 불한당이었대요. 여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탁자 위에 신발 신은 두 발을 올리고 담배를 피우며 "이제 당신 딸과 나는 둘이 잘 살 테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지 뭡니까. 더 기가 막히는 건, 딸이 그 남자가 그러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더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인지 뭐시긴지에 완~전히 눈이 먼 거죠.


저희 부모님이었다면, 아니 평범한 한국 부모님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을 끌고 돌아왔을 것 같은데 제 지인 부부는 역시 미국인은 미국인이라 "스물 아홉이나 된 딸의 인생을 부모 하고 싶은대로 컨트롤할 수는 없다"며 그냥 돌아온 후에 두 부부가 며칠을 울고 남편은 화병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듣고 저는 생각했죠.

 

아아악~~ 제발 컨트롤 해 줘요.
듣고 있는 내가 더 괴로우니까 제발 컨트롤 해 줘요~~~!!!!


부모님이 실의에 빠져 있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그 후로도 계속 연락이 없다가 아이를 낳고 3개월 후에야, 그것도 제 지인이 딸과 그 남자, 그리고 아이의 왕복 비행기 표를 다 사서 보내며 제발 한 번 만나자고 애원한 뒤에야 한 번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 때도 그 놈팽이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심지어 손녀를 안아 보지도 못하게 했대요. 상황이 이쯤 되면 '나 죽는 꼴 보고 싶냐!'라는 협박이라도 해 가며 뜯어말릴 만도 한데 제 지인은 수도 없이 이 말만 반복하더라구요.


"우리 남편이랑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나오느니 한숨이고 눈물 뿐이야.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우리 딸은 스물 아홉 살이야.
자기 인생 사는 걸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잖아."


몇 번 말해도 부족하지만, 한국 부모님 같았으면 이미 ["호적에서 파겠다" + "내 눈에 흙이 들어가거든" + 뒷목 잡고 쓰러지기] 3종 세트를 시전했겠죠? 제 지인도 속으로는 그 망할 녀석에게 불꽃 싸다구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딸의 인생은 딸의 것이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네요.


쿨하고 싶지 않아도 쿨.해.야.만. 하.는. 미국 부모의 고충이랄까요.


만약 제가 그런 지경에 빠졌다면 저희 부모님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생각했더니 그 지인이 못견디게 가여워졌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후면 손녀의 돌이 다가오는데 생일 파티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아직 모른대요. 딸은 모든 일에 그 남자의 결정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저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랄까요. 아휴~ 정말 듣고 있는 제가 답답해서 속이 터지더라구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첫 아들을 얻었다며 기뻐하는 동생에게 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평생 눈을 뗼 수 없는 적을 낳아 놓고 기뻐하는구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모님들이 자식들 키우며 속 썩는 건 다 똑같네요. 엄마 아빠, 죄송합니다. 엉엉엉

 

 

여러분은 부모님 속 썩이지 마세요,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