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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한류팬 미국 아주머니들의 네트워크, 체계적이라 깜짝 놀랐네!

by 이방인 씨 2014. 10. 3.

틀 전에 집 앞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언급한 기억이 나는데 옆집 아주머니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중국계이신 줄 알았다가 최근에 일본계 3세시라는 걸 알았어요.) 어.마.어.마.한 한류팬이십니다. 드라마면 드라마, 노래면 노래, 음식이면 음식까지 한국 것이라면 뭐든지 일단 좋아하고 보시는 분이지요. 그 덕분인지 저희 가족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신데 스스로를 "Your neighbor Ajumma" (너의 이웃 아줌마)라고 칭하시며, 자주 마주치는 저희 어머니께 늘상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신다고 해요.

저랑은 딱히 접점이 없어서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짧은 수다를 떠는 정도지만 이틀 전에는 갑자기 한국 드라마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무려 30분을 집 앞에서 떠들었답니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이 동네 한류팬들 네트워크에 속한 분이셨습니다. 그 네트워크는 다음의 구조로 짜여 있더군요.

 

공급책:

중국계 미국인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수 한류팬
드라마와 자막 입수 및 제작

중간 관리자:

옆집 아주머니가 바로 이 역할
1차로 폴더 건네 받아 방연연도 순으로 정리하여 보관

↙    ↙    ↙    ↓    ↓    ↘    ↘    ↘   

일반 회원들:
10분 거리의 뒷집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의 사촌, 옆집 아주머니의 직장 동료 등등
중관 관리자가 공평하게 분배해 주는 파일을 넘겨 받아 감상한 후,
다 본 파일을 서로 교환하며 한 바퀴 돔


이렇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라미드 최상단의 공급책 아주머니는 한류팬 경력이 오래라 한국말도 꽤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영문 자막을 스스로 만들기도 하신다네요. 그 다음 간부(?)가 바로 저희 옆집 아주머니로, 컴퓨터에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연도별로 폴더에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래된 작품부터 보기 시작하는데 그 양이 얼마나 방대한지 매일 매일 근면성실하게 감상해도 최신작품을 따라잡으려면 한 세월 걸릴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하긴, 2년 전에 옆집 아주머니께서 선덕여왕에 푸~욱~ 빠져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선덕여왕은 한국에서 2009년에 방영됐죠?)

그래 요즘은 어떤 드라마들을 보고 계시냐 물었더니 "Heaven's Order"라는 폴더를 이제 갓 여셨다고 합니다.

'헛, 헤...헤븐스 오더가 뭐지???'

여러분은 어떤 작품인지 알아들으셨나요? Heaven's Order란 바로 이 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였습니다.
천명 = Heaven's Order 였던 거죠.


저는 이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다가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인터넷 검색하여 알아냈답니다. Heaven's Order 이전에 보신 작품은 <Rascal Sons (악동 아들들)> 이라는 것인데 이건 또 어떤 드라마인지 아시겠나요?

 

저는 이 드라마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이성재 씨 얼굴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군요.


흔히 한류팬이라고 하면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많은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는 작품 매니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의 입에서는 저는 듣느니 처음인 각종 드라마의 제목들이 줄줄 쏟아져 나오더라구요.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냐 물으니, 한국의 모~든 드라마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는 초고수 공급책 아주머니의 주도하에 회원들에게 사극,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미니시리즈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공급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왕고께서는 휘하 회원들의 장르 편중을 용납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덕분에 옆집 아주머니는 저도 모르는 한국 드라마를 꿰고 계셨던 거죠. 천명을 다 보고 나면 "써롸~노" 라는 폴더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길래 저는 잠시 멍~하니 "써롸~노"가 무슨 뜻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써롸~노가 뭐지???
아~ 이런 영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대체 뭐지???


하며 당황하고 있는 찰나, 아주머니께서 제가 못 알아듣자 드라마 내용을 마구 설명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2분 쯤 들었을 때 저는 "아아~~ 프흐흐흐"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요. "써롸~노" 라는 드라마가 바로 이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초고수 공급책께서는
"시라노" 라는 한글을 SIRANO 라고 옮기신 듯합니다.
한글을 아는 그 분은 제대로 읽으셨겠지만
옆집 아주머니는 쓰여진 영어 그대로 "써롸~노"라고 제게 전하신 거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격을 당한 저는 속으로 어마무지하게 웃었지만 아주머니께서 민망해하실까 봐 터져나오는 폭소를 참으려 애써야 했답니다. 아직도 열지 않은 한국 드라마 폴더가 많아서 내년까지도 거뜬할 것 같아 행.복.하.다.는 옆집 아주머니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주머니, 그런 정신 좋습니다!
경주마처럼 오직 폴더만 보고 계속 달리시는 겁니다!

왕고를 제치고 피라미드 최상층에 도달하실 날이 머지 않아 보입니다요~!


써롸~노 덕분에 한껏 유쾌했지만 그 후로도 10분간 이어진 아주머니와의 대화 끝무렵에 저는 진땀을 흘리며 속을 끓여야 했는데 그 사연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