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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영어로 말 더듬는 네이티브 스피커를 만났죠

러분이 이제부터 미국에서 살게 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이 무엇인가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분명 '영어'도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자신이 이미 네이티브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또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민 초기에는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죠.

미국 땅에 도착한 지 십 여일만에 바로 학교에 다니게 된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말을 듣고 대충 감 잡는 건 하겠는데 말이 원하는대로 나오질 않더라구요. 본의 아니게 과묵한 생활을 해야했죠.

꿀먹은 벙어리는 꿀이라도 먹었으니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먹은 것도 없이 벙어리로 지내려면 당도 떨어지고 속도 타죠.


이민 초기의 어느 날인가, 거리에서 견공을 보고 속으로 '얘는 인간의 말을 못할 뿐이지, 시켜 보면 분명 네이티브일 거야'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물을 보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그만큼 네이티브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확신이 견고했다는 거죠. 아무래도 외국인 입장으로 현지 언어를 배우려니 미국인들의 영어가 부러웠나 봐요. 그런데 사람이 하나의 믿음에 몰입하다 보면 의외로 단순한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영어도 완벽하리라는 '완벽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나 아뿔사!


미쿡인이라고 다 영어가 CNN 앵커 수준인 건 아니더라구요.


분명 토종 한국인임에도 어법과 발음이 부정확하다거나 말이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들이 있둣이, 미국인들 중에도 언어능력 향상 및 교정이 필요한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어느 교수님처럼요.

이 분은 정~말이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학생들을 위한 친절봉사 정신으로 똘똘 뭉친 교수님이셨는데, Stutterer (말을 더듬는 사람) 라는 한 가지 약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직업군이라면 모를까, 거의 매일 다수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해야하는 사람이 말을 더듬는다는 건 어찌 보면 치명적 단점일 수 있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그 분의 강의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답니다.

말을 더듬는 데에도 유형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분의 특징은 첫마디를 시작할 때 심~한 버퍼링으로 사람 몸을 들썩이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요.


, , , ,   저스트 원 투 ~ ~ ~ ~
, , , , ,   댓츠 ~ ~ ~ ~ ~ ~
, , , , , ,   잇츠 낫 ~ ~ ~ ~ ~
, , , , ,   쿧 비
, , , , , , 렛츠  두 프라블럼 넘버~ ~ ~ ~ ~ ~ ~


일단 첫마디만 무사히 넘기시면 그 다음부터는 놀랄 만한 속도로 말을 이어가시기 때문에 문장 처음의 버퍼링만 이겨내면 되지만, 강의 내내 이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거죠. 저는 그 교수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앞에서 "유, 유, 유, 유, 유, 유~" 하실 때마다 속으로 응원을 하곤 했습니다.

핫! 교수님, 지금 차 키 꽂고 안전벨트하고 네비게이션 다 찍은 겁니다!
자, 이제 시동만 거시면 됩니다!!
일단 시동만 거시면 눈 앞에는 오로지 아우토반 뿐입니다요!!!


아마 지켜보는 학생들을 모두 한마음으로 단결시키는 효과마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약점에도 불구하고 워낙 자상하고 친절한 분이셨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그 교수님을 좋아했고 교수 평가도 나쁘지 않았지요. 흡사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화 <킹스 스피치>의 강의실 버전이랄까요.

 

영국의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죠.
Stutterer에서 명연설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타고난 약점이 있어도 두려워 말고 노력으로 극복하면 된다'는 건설적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교수님을 보며 받은 느낌은 그와는 방향이 조~금 다르답니다.


약점을 극복할 수 없어도, 심지어 감출 수조차 없어도,
그를 상쇄할 만한 장점이 있으면 된다.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단한 노력으로 약점을 없애거나 그러지 못하면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하지만 교수님은 직업특성상 수많은 학생들에게 노출할 수 밖에 없었죠. 여쭤본 적이 없어서 교수님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 눈에는 교수님의 장점이 훨~씬 크게 보였답니다. 강의가 인기 있었던 걸 보면 아마 다른 학생들 눈에도 그러했나 봅니다.

때가 때인지라 블로거 이방인 씨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 그 분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감추고 싶은 (인간으로서든, 블로거로서든) 약점이나 결함을 그야말로 생면부지의 불특정다수에게 노출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뛰어넘을 만한 장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특화시켜 여러분의 시선을 분산시킬까?하고 오늘도 가열차게 잔머리를 굴려 봅니다.

모두 신나는 토요일, 유후~

  • 맴매 2014.09.06 06:46

    너~~~무 멋진 글이에요~!!!!!
    단점에 대해서 극복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상쇄할만한 장점을 키우는것이 훨씬 좋은 대안 같아요...
    살면서 어쩔수 없이 안고 가야할 내 인간성의 한계가 많이 보이는데 고쳐질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아요...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전략으로 끌고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장점이 뭐더라..??? ㅠ.ㅠ
    아무거나 잘 먹는거...는 극대화 시키면 일찍 죽을것 같고.. ㅠ.ㅠ
    이것도 어려운 숙제네요.. 흠흠

    • 이방인 씨 2014.09.08 14:36 신고

      저랑 비슷하십니다. ㅋㅋㅋ 저도 단점을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특화하는 게 더 빠를 거라 생각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장점이.... ^^;;

  • nadoos 2014.09.06 07:37

    참 대단하신 필력이시네요
    타고 태어니신 듯
    감탄 또 감 탄 ~~

  • 노지 2014.09.06 07:56 신고

    미국이라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추석 잘 보내세요~ ㅎㅎㅎ
    그곳은 늘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겠지요...?ㅎㅎ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 이방인 씨 2014.09.08 14:37 신고

      추석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한인 마켓에 갔더니 송편을 팔기에 알았답니다. 늦었지만 노지님도 즐거운 한가위 보내셨길 빕니다. ^^

  • 들꽃처럼 2014.09.06 10:04

    방인님의 장점은 공지사항도 재밌고 유쾌하고 시원시원 하다!
    방인님은 내숭? 같은게 없어서 좋아요~~~
    게다가 꿀꿀할 틈이 없어요!

    • 이방인 씨 2014.09.08 14:39 신고

      사람 성향이란 게 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같아요. 들꽃처럼님은 좋게 말씀해 주시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제 그런 점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실 걸요. ㅋㅋㅋ

  • 하늘비 2014.09.06 17:00

    저도 대학 때 교수님이 떠오르네요...
    심하게 비음이랄까? 그런게 섞인 남자 노교수님이셨는데...
    수업시간에 처음에 참 적응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교양이어서...뭐....학생들은 많았지만...여러가지 잘 배웠던 기억 나요.

    정말 장점이 크다면..그리고 그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단점을 작게 보고 장점을 크게 보면서 더 좋은 것을 많이 배우지 않을까 싶어요..^^

    • 이방인 씨 2014.09.08 14:41 신고

      저도 초반에 이 교수님께 익숙해지느라 조금 힘들었어요. ㅎㅎ

      타인의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알아 보고 높이 평가하는 습관이야말로 큰 장점인 것 같아요. ^-^

  • 2014.09.06 22:49

    비밀댓글입니다

    • 이방인 씨 2014.09.08 14:43 신고

      제가 듣고 싶은 말을, 가장 필요할 때에 해 주시는 님 덕분에 지칠 때 힘이 되곤 합니다. ^^ 어쩄든 상징적으로 5년까지는 버티고 싶으니 힘내야죠! 항상 감사해요~

  • 카나다윳 2014.09.07 04:39

    방인님은 한가지 단점?에 백가지 장점
    그 유려한 문장력 그 누가 흉내 낼수
    있을지 전 명절 쉬러 고국에 부러우시죠

    • 이방인 씨 2014.09.08 14:44 신고

      헐~~~ 카나다윤님 한국 가셨군요!!! 진짜 최고 부럽네요. ㅠ_ㅠ 오늘도 한국 TV 보다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슬퍼질 정도였어요. 저 대신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즐거운 추석 보내고 돌아오세요~ ^^

  • 2014.09.07 09:42

    비밀댓글입니다

  • 2014.09.07 12:10

    저는 아직 방인님의 단점을 아직 발견 못 했으니 방인님은 확실히 성공한 블로거이십니다!

    • 이방인 씨 2014.09.08 14:46 신고

      어익후~ 뿅님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크게 봐 주시는 상냥한 분이시군요!! 앞으로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희망사항이 생겼습니다. ㅎㅎㅎ

  • 세르비오 2014.09.07 22:22 신고

    모든 사람은 장점이 있습니다. 장점을 극대화 시켜서 사람을 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ㅎㅎ

  • 취업준비생 2014.09.09 04:05

    이방인님 너무 오랫만에 댓글 답니다ㅋㅋㅋㅋ추석이라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간만에 글들 찬찬히 봤어요ㅋㅋㅋ언제나 이방인님 평범한 소재도 참 맛깔나게 쓰시는 듯ㅎㅎㅎ싫은 사람 일수록 장점을 더 많이 찾아 보려고 노력해야 겠어요ㅋㅋ미국도 오늘 보름달이 오늘 뜨나요? 추석 느낌은 안나겠지만ㅋㅋ미쿡 달을 보며 소원 빌어봐요ㅎㅎ한국 달은 엄청 밝게 떳습니다ㅎㅎ

  • 배나 2014.09.11 13:49

    ...그를 상쇄할 만한 장점이 있으면 된다.
    무척 마음에 와 닿네요~~
    제가 평소에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코드가 맞고, 마음이 통하고, 뭔가 편안하다던가 한 친한 사람들 있잖아요?
    남이라면..모르는 사람이라면 보기 싫거나 못마땅한 점들을 그들이 갖고 있어도,
    왠지 밉지 않고, 그런 점까지 껴안아주고 싶고 그렇잖아요.
    물론 저도 그들에게 그럴테구요.
    친한 사람이란 미운 점 보다, 내게 더 좋게 느껴지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ㅎㅎㅎ
    이방인님 얘기랑은 좀 다른 포인트인지 모르겠는데,
    암튼 제가 생각하는 친한 사람이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단점이 제가 느끼는 장점으로 상쇄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ㅋㅋㅋ
    뭔가 말재주가 없어서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네요.
    암튼 상쇄!!!라는 말이 맘에 딱 와 닿아요^^
    이방인님도 자꾸 상쇄될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달으시면서 쭈욱 글을 써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이방인님 글을 읽는게 소소한 행복이랍니다.

  • 감사:) 2014.10.22 14:23

    저는 미국에 이민온지 얼마안된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제가 이민초기라서 사람들 이야기하는건 어느정도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데 말은 전혀 못하겠더라구요. 더듬더듬거리면서...ㅠㅜ 의사소통이 어려운건 당연한일이지만 가끔은 이런제가 바보같이 느껴질때도 많아요. 말을 제대로 못하니 자연스럽게 친구도 많이 없구요. 그래도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지만 미국인들이 어떤 화제거리를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니 많이 답답합니다. 미국 사람들과 이야기 할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 mnsng 2014.11.02 20:01 신고

    안녕하세요, 처음 방문했습니다. 제가 남이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스스로는 고민할만큼 말을 더듬는 데요, 제 딸이 세 살 때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하더군요. 유전이 참 경이롭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던지.. 남자가 확률상 훨씬 많은데 말이죠.. 지금 열 살인데 그래도 명랑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오늘 이렇게 존경받으시는 stutterer 얘기를 읽고 힘이 좀 나네요.
    우연히 찾은 블로그에서 말더듬에 대한 글을 이 밤중에 접하고서는 주절주절 썼습니다.. 종종 들를께요.
    참, 저도 캘리포니아 살고 있습니다.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