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어머나! 얼굴빨개지기 금지. 미국학교의 성교육

by 이방인 씨 2011. 9. 15.

학교때 제가 한국에서 받은 성교육의 전부는 여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분만실에서 아기가 막 태어나는 출산비디오를 본 것 뿐이었어요.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성교육이 아니라 분만 다큐멘터리였죠. 화면 속 장면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저희들은 '절대 임신은 하면 안되는 거구나' 하고 느꼈으니 성공적인 순결교육이 된 셈인가요??

그 비디오를 마지막으로 성교육과는 연이 없이 지내다가 미국 고등학교로 전입하고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잔잔한 바람처럼 예고도 없이(!) 급작스레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외부강사가 들고 온 가방에서 나온 요상한 물건들. '아...이게 바로 미국의 성교육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에서부터 나눠주는 형형색색의 콘돔들... 난생 처음 본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던 찰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골적이지만 전혀 선정적이진 않았답니다.
그냥 생물시간과 양호시간을 합친 느낌이랄까요.

ㅎㅎㅎ

지금 글 읽는 분들 중 어디선가 실망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몇몇 아이들이 키득거리기도 하지만 성교육 전문 여성강사 분은 아라곳하지 않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피임법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여러가지 피임기구들의 사용법, 경구피임약의 복용법 및 각각의 장단점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 단 한 번 시술로 피임효과가 5년이나 지속되는 피임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이 날 처음으로 알게됐습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강사분이 직접 본인이 오른팔 안쪽에 심은 칩을 보여주더라구요. 

이론을 다 들은 뒤 직접 실습으로는 옆에 앉은 짝꿍의 손가락에 콘돔을 바르게 착용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또 한 번 키득키득거리는 아이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진지하게 수업에 임합니다. 저 역시 민망함을 무릅쓰고 조용히 실습을 마쳤죠. 짝꿍이 여자여서 참 다행이었지 뭡니까...

실습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복습 시험지를 풀고 수업이 끝납니다. 20명 남짓한 학생들 중 장난스러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은 있어도 수업을 껄끄러워하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문화가 아니라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이런 성교육이 일반적인 나라라 그랬을까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성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금요일에는 공짜 콘돔을 나누어 주었답니다. 고등학교도 그러니 대학은 오죽할까요. 제가 대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여자 화장실에서 칸마다 문짝에 콘돔과 피임약, 성병이나 에이즈검사가 모두 학생에게 무료라는 전단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었죠.

안들려

이것 참....우리학교 좋은학교.....라고 해야되나....?


나중에 사회학과 교수님에께 들으니 미국도 처음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피임을 권장하고 콘돔을 마구 뿌려댄 것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혼결순결 교육을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한데 10 여년이 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대 미혼모 증가율이 감소하기는 커녕 점점 증가하자 순결교육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성교육 정책을 수정했습니다.

Abstinence (금욕) 대신 피임을 가르치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 후 90년대 들어서면서 순결교육은 피임교육으로 대체되었고, 이는 10대 미혼모와 성병감염수를 현격히 줄이는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공립학교는 물론이고 곳곳에서 공짜 콘돔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랍니다. 

요즘도 점잖은(?) 나라 한국에서는 여중생들이 어느 교실에선가 십 여년전 제가 보던 분만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뭇 궁금해지네요.

여러분, 재밌게 보셨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