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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어느 미국인 남매가 눈물 흘리며 싸운 사연

by 이방인 씨 2014. 6. 20.

건 사실 몇 달 전의 이야기랍니다. 평소 조금 알고 지내던 미국인 여성을 우연히 식당에서 보게 되었는데 남자 형제와 함께 왔다고 소개해 주더라구요. 미국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상황이니까 저도 대~충 인사를 하고 근처의 테이블에 앉았죠. 남매는 긴밀한 대화를 주고 받는 듯 보였는데 중간 중간 남자의 얼굴이 벌~개지고, 목소리가 높아지고를 반복하더라구요. 멀리서 힐끔 보니 누이의 잘못을 추궁하고 있는 듯했답니다. 여자 분은 연신 이런저런 손짓을 해가며 뭔가 해명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급기야...! 남자 형제가 벌떡 일어나더니 식당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구요. 자리에 혼자 남은 여자 분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이방인 씨, 무~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못 본 척해야 할까,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게 모범답안일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히. 고민하다 그녀에게 걸어가서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어쨌든 아는 사이니까 적어도 괜찮냐고 묻는 게 매너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평소에 알고 있는 미국인들의 특성을 보면 그들은 이럴 때 다가가서 말 한마디라도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 몰라도 내가 뭔가 도울 게 있다면 말해달라'고 하거든요. 저도 가서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우리가 소란스러웠죠? 동생이 조금 흥분했어요."


여기서 더 캐물을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어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얘기 잘 끝내길 바랄게요.' 정도로 끝내고 제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답답했는지 그녀가 묻지도 않은 사연을 이야기하더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몇 달 전에 병원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의사 말로는 이제 길어야 4개월이래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말에 저는 크게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억~ 그런 슬픈 가정사는.... 안... 안 물어 봤사온데...


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정말 유감이예요." 하고 정말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죠.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와 남동생이 싸운 이유도 설명해 주었는데 사연인 즉, 그녀는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남은 4개월 동안 자신이 직접 보살피길 원했는데 동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가 병원에 머무르셔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그녀가 제게 말하길,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사셨어요. 아버지 최후의 4개월 만이라도, 내가 아버지를 위해 살고 싶어요."


그런데 동생이 반대하는 이유는,


"나도 일과 가정이 있어 전적으로 아버지를 돌볼 수만은 없는 상황인데, 모든 일을 누나에게 떠넘길 순 없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누나의 마음은 알겠지만 누나를 위해서 그럴 수 없어. 차라리 병원에 모시면서 우리 둘이 시간 날 때마다 들르자."


결국은 동생도 누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언성을 높힌 것이었죠.

의도치 않게 남의 가정사를 들어버린 저는 위로할 말도 대꾸할 말도 찾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는데 잠시 후 밖에서 열을 식힌 남동생이 돌아오더군요. 덕분에 다행히도 저는 자연스레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남매도 몇 분을 더 이야기하더니 곧 자리를 뜨더라구요. 그녀와 눈짓으로 Goodbye를 나누고 나서도 그녀의 말 때문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웠습니다.


"최후의 4개월 만이라도 내가 아버지를 위해 살고 싶어요."


30년이 넘은 제 인생의 시간 중 과연 몇 날 며칠이나 부모님을 위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여쭈면, 그분들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 자신보다는 너를 위해 살았다."


세계 어디나 부모님의 마음이야 똑같겠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의 부모님들은 정말이지... 자식을 위해 사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부모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길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슬프고 죄송스럽고 세월이 야속하고 부모님이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 숙명이 원망스럽고... 그렇네요.

여러분, 저도 감히 이런 말할 주제가 못되는 불효녀입니다만 할 수 있을 때 부모님께 사랑을 되돌려 드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