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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맥도날드와 한인 어르신들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았어요

by 이방인 씨 2014. 1. 23.

요 며칠 떠들썩했던 미국 맥도날드 매장과 한인 어르신들 간에 불거진 갈등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혹시나 며칠 간 뉴스 확인을 못 하신 분들을 위해 사건(?)의 개요를 말씀 드리자면,

뉴욕의 Flushing이라는, 한인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의 맥도날드 매장은 한인 교포 어르신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고 합니다. 뉴욕 타임즈나 NY Daily News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어르신들은 커피 한 잔이나 프렌치 프라이 하나를 주문하고 몇 시간은 기본이고 심지어 하루 종일 앉아서 담소를 나누신다네요. 때문에 음식을 주문한 고객들이 앉을 자리가 없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매장 매니저가 "커피를 주문하고 20분 내로" 마셔 달라는 안내문을 써 붙이고 20분이 지나면 어르신들께 매장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는데 어르신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결국 경찰까지 불렀다는군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것도 여.러.번.이라고 하네요. 이 사태를 두고 뉴욕의 한인회 분들이 해당 맥도날드 매장 불매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맥도날드 측과 한인회 대표 분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았는데, 한인회 측은 매장에 손님이 많이 몰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어르신들이 1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는 내용에 동의했습니다.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는데요.
사실 저는 이 이슈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윽~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어제 이런 글을 남겨 주신 방문객이 계셨습니다.

 


미국내 의견을 궁금해하셨는데 이 문제를 "인종차별"이라고 보도하는 미디어나 그렇게 이해하는 미국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한인들이나 다른 민족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요.
미국인들 중에는 이 어르신들의 행동을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라며 문화적 차이로 해석하고 매장 매니저의 행동이 극단적이었다고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건의 핵심이 인종차별이라 생각하는 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래 사진을 한 번 보시죠.

 

(ⓒ NY Times)

해당 매장에서 담소를 나누시는 한인 어르신들의 모습입니다.
매장의 일부분만 나왔지만 애초에 그리 한적한 곳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군요.
자리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손님이 몰리는 점심 시간에는 통로마저 좁을 것 같습니다.
매장 사정이 이러니, "음식을 산 손님들이 앉을 곳이 없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매니저의 말은 거짓이 아니겠지요.

한인을 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원활한 영업을 위해 조치를 취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고객의 권리침해라는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요.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커피 한 잔을 20분 내로" 마셔 달라는 매니저의 요구는 "지나치다"며 어처구니 없어했지만 커피 한 잔을 시키고 하루 종일 머무르시는, 더욱이 그것이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그러시는, 한인 어르신들을 향한 시선도 곱지는 않습니다.
인근에 어르신들을 위한 시니어 센터가 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어르신들의 행동을 납득하기 쉽지는 않죠.
참고로 시니어 센터보다 맥도날드를 선호하시는 이유 역시 신문 인터뷰에 실렸는데 맥도날드의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고 "빅 맥 냄새도 즐기고 싶어서"라고 하시는군요.

커피 한 잔이든 프렌치 프라이 하나든 일단 음식을 산 사람이 매장에 머무르는 것은 고객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저도 식당에서 일을 해 보았지만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폐장 시간이 되지 않는 한, 나가 달라고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고객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간 거액의 소송을 당하기 십상인 나라니까요.
제 생각에 매장의 매니저 역시 그게 무서워서라도 섣불리 차별적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다민족·다문화 사회인 뉴욕에서, 그것도 한인 인구가 많다는 지역에서 매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한인 차별의 의도를 가지고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식당을 운영하시거나 식당에서 일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도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탑니다.
받을 수 있는 손님을 놓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들까지 나오면 매니저나 매장주의 마음은 여간 심란한 게 아니겠죠.

 

사랑합니다. 고객님~
눈치 좀 있으시면 더 열렬히
 사랑하겠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오는 다른 손님들, 그리고 그 손님들로 인해 돈을 버는 매장주, 그 매장주가 주는 월급을 받기 위해 매장을 관리해야 하는 매니저까지 모두 다 함께 사는 세상인데... 아무리 자신의 권리가 중요하다 해도 타인을 위한 배려심을 보이면 더~ 사랑스러울 텐데 말이죠.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하고 겨우 이틀이 지난 어제, 뉴욕 타임즈에는 이 사건의 업데이트가 실렸습니다.
불행하게도 한인 어르신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는군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1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겠다 협의를 했는데 이 규칙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11시부터 4시까지 머무르는 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쯤되니 매장 매니저가 포기한 건지 security guard는 한인 어르신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요.
기사 마지막에 security guard의 말이 재밌습니다.


"They never bother anybody. They just stay here like they own the spot."

그들은 누구도 성가시게 하지는 않아요.
다만 여기가 자기 땅이라도 되듯이 계속 앉아 있을 뿐이죠.

 

같은 문제를 보고 듣고도 제각각 의견이 분분할 것입니다.
한인 어르신들이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매장주가 영업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후자 쪽에 무게를 실었지만 양측 모두 배려심이 부족했다고 보이네요.
앉을 자리가 없어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알았다면 슬~쩍 일어나 비켜줄 만도 한데 매장 매니저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버틴 어르신들을 무작정 감싸 드릴 수는 없지만, 열 받는다고 "커피 한 잔에 20분"이라는 치사한(?) 안내문으로 감정 싸움으로 끌고 간 매장 매니저 편을 들 수도 없죠.
결국 떠들썩하게 신문을 장식하고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으니 갈등을 위한 갈등이었을 뿐입니다.
업데이트 소식을 보니 고집에 있어서 만큼은 한인 어르신들의 확실한 승리네요.

오늘도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