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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아시아나 사고에 대한 한국의 반응이 놀랍다는 미국인들

by 이방인 씨 2013. 7. 10.

요즘 미국에서도 연일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제가 사는 지역이 북가주 (Northern California)다 보니 샌프란시스코 공항 한두번쯤 이용 안 해 본 사람이 없어서 더욱 관심들이 많죠.
아직까지도 사고의 원인에 대해 이런 저런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오늘은 이 사고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분석한 기사가 실렸더라구요.
첫 눈에 보이는 제목으로만 판단하면 썩 유쾌한 편은 아닌데 이렇습니다.

(Associated Press)

아시아나 항공기 충돌은 한국인들에게 국가적 수치
안들려흐음~ 글쎄... 국가적 수치라고까지 생각한 적 없는데 누가 이 따위 제목을 뽑았을까?

하며 기사를 읽어 보니 내용은 아시아나 사고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 한국인들의 민족적 성향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성명을 발표했으며 한국 국민들은 이 일로 외국에서 한국의 신뢰도나 이미지나 나빠질까 봐 근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미국인들이라면 이런 반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군요.

이어 AP통신은 부산 대학교 정치학과 Robert Kelly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 사회, 기업의 분리가 뚜렷한 서구에 반해 한국인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대기업의 일도 곧 국가의 일로, 그리고 국가의 일은 곧 나의 일로 여긴다. 한국에서 대기업은 민족주의의 대상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성향은 작은 나라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는 데 대기업들의 공이 컸으며 짧은 기간에 급속성장한 한국 국민들은 세계적 대기업이 된 자국의 기업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풀이했군요.
기사에는 서울 시민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시아나 항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했네요.

이 뉴스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기업이 곧 한국의 대표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자국의 기업이 안 좋은 일로 뉴스를 장식하는 것을 걱정하며 수치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기사 원문 출처 http://news.yahoo.com/asiana-crash-point-national-shame-koreans-125115195.html)

여러분은 이런 분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이 기사가 말하는 대로 한국인들에게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나 국가대표 스포츠팀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죠.
한국인들이 '외국에 보여지는 한국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아마 누구나 느끼고 있을 텐데요.
때로 이런 성향은 지나치게 외국을 의식한다며 자아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특히 대기업이나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촌스럽다'며 고개를 흔들기도 하죠.
덧붙이자면 저도 촌스러워서 미국에서 가전제품이나 휴대기기 모두 삼성이나 LG만 고집하고 가끔 미국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한국에 가면 이제 막 청동기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

이런 저도 블로그를 하면서 혀를 내두른 적이 한 두어번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대뜸 제게 조승희가 버지니아텍에서 총기난사한 사건을 미국인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 있으니까 그 사건을 미국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한국인들이 다 그렇게 정신이상이 있거나 파괴적인 성향을 가진 건 아니라고 알려야 한다는 일념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조승희 사건 때 한국인들이 미안해한 사실은 이 기사에도 나오는데 당시 미국인들은 왜 한국인들이 사과를 하는지 이해를 못해서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PSY가 강남스타일로 주가를 한창 올리다가 오래전에 미국을 비난하는 곡을 발표한 사실이 미국 언론에까지 보도되자 제 블로그에 오셔서 '미국인들이 PSY를 싫어하면 어쩌냐'며 엄청난 장문의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분 말씀이 그것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되서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혹 미국에서 PSY와 한국인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불안해서 인터넷 검색만 계속 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제게 시시각각으로 미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고 전해달라고까지 하셨답니다.

이런 사례들, 좋게 말하면 지극한 나라사랑 민족사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히 말하면 외국인이 보는 한국/한국인의 이미지에 집착한다고 할 수도 있겠죠.

AP의 기사에서는 전쟁의 폐허를 다지고 일어나 급속 고도성장을 이루어 낸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그 배경이라 설명했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 말고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남의 의식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이민 와서 살다 보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때로는 타인의 평가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예전에 한 방문객께서 이런 푸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행하기 어려운 일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사는 것'이다. 매일매일 남들을 의식하고 신경쓰느라 정작 내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 수가 없다.


간혹 여러분이 '여유로운 듯 보인다'고 평하시는 저도 미국인들처럼 100% 후리~ (Free)한 소울은 아니랍니다.
본국에 계신 분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미국 친구들과 비교하면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Free Style 미국 친구들을 겪어 보니 한국인들의 이런 성향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때로는 이런 성향이 자신의 잠재력을 120% 발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스스로 만족하고 싶어하는 마음 + 타인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합쳐지면 수퍼 파워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을 의식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한국사회 전체가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런 성향을 아예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어력을 키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어력이라.... 말은 참 쉽죠? ^^;; 흥5


끝으로 이 기사 밑에 달린 미국인들의 반응이 흥미로워 간략히 소개할까 합니다.
그들은 '국가의 일과 자신의 일을 동일시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듯 합니다.
그 정신이 부럽다는 댓글들이 많았고 미국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도대체 사람들이 나라를 뭘로 아는 건지 모르겠다며 (ㅋㅋㅋ) 애석해하는 글도 눈에 띄네요.
미국인들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은 설령 미국의 잘못으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부끄러워하거나 책임질 생각 같은 건 못할 거라며 한국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댓글도 있었구요.
일이 터지면 미국은 남탓하기에 바쁜데 한국인들은 국가의 실패와 성공 모두 함께 끌어안는 것 같다며 배워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의 활약상이 미국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서 댓글에도 그들을 칭찬하는 말들이 많더라구요.
그런 승무원들을 배출한 한국은 수치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말도 읽을 수 있었죠.

천개가 넘는 댓글들을 일일히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국분들의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한국/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더 좋아진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댓글들 중 이 한마디가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다.

"지금은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들도 하루 빨리 쾌유하시길 빕니다.

여러분 모두 안전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