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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결혼은 안해도 좋지만 아이가 없으면 눈총받는 미국

by 이방인 씨 2013. 3. 25.

어제 Scientific American 이라는 과학 잡지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Is the Meaning of Your Life to Make Babies?
인생의 의미는 아이를 낳는데 있는가?

 

과학 뉴스를 다루는 매체이니만큼 기사는 생물학과 유전학에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와 아기' 가 아니라 종족번식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었는데요.
정말 한 인간이 태어나는 목적은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있을까요?

 

 

미국 사람들은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천재지변이나 세계의 종말이 가까워 오면 그 누구보다 '아이와 개'를 먼저 살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아이를 좋아하죠. (아이를 구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와 여자' 도 아니고 '아이와 개' 라니, 이들의 견공사랑도 이상하리만치 유별나죠?)
여기서 '아이'라는 말은 본인의 자녀만이 아니라 Children이라고 지칭하는 '조그만 인간들' 모두를 말합니다.
누구의 아이인지 어떤 아이인지 관계없이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신이 이 세계에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성인들이 아이가 없으면 은근히 눈총을 받거나 아니면 대놓고 한 소리 들을 수가 있답니다.
요즘은 전통적 보수파 백인들을 제외하면 결혼을 하고 안하고는 크게 개의치 않지만 부부 혹은 사실혼 관계의 커플에게 아이가 없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노총각 노처녀들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 반면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아니 도대체 왜 아이를 안 낳는 거냐'며 필요이상의 호기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여기도 꽤 있더라구요.

짐짓 궁금한 척 묻는 사람들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기적 (selfish)' 인 행동이라며 훈계도 서슴치 않습니다.
다행히 저는 손에 결혼반지가 없기 때문에 한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두어번 옆에서 목격한 적이 있죠.
그 중 한번은 결혼한 여성의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 다섯이었는데도 '왜 아이 안 낳느냐며' 들이대더라구요.
물론 미국인들의 평균 결혼과 출산 연령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25세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만 그 여성이 자기랑 남편은 아직 공부도 더 해야 되고 직장도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는데도 '이런 저런 사정 봐 가면서 어떻게 아기를 낳냐' 되묻던 분을 보면서 절로 웃음이 났었습니다.
저야 남일이니까 가볍게 웃을 수 있었지만 당하는 여자분은 꽤나 곤혹스러웠겠죠.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밖에서 만난 사람들이야 아주 간혹 그런 참견을 하겠지만 가족들이나 친척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압박을 가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명절 때 친척 어르신들이 '공부는 잘하니?' '넌 도대체 장가/시집은 언제 가냐?' 하시는 것과 똑같은 거죠.
제가 들었던 최악은 엄마가 전화하실 때마다 '넌 도대체 나를 언제 할머니로 만들어 줄 거니?' 하시면서 신세한탄을 하신다는 사연이었죠. ^^;;
분명히 몇년 후까지는 아이 계획이 없다고 누누히 말씀을 드렸는데도 소용이 없다네요.

 

 

이렇게 타인이나 집안 사람들의 전방위 압박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이가 없다고 하면 불쌍한 듯 'Oh~' 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마치 인생의 큰 부분이 부족한 것처럼 측은히 여기는 시선이나 수군거림을 겪을 때마다 스트레스 레벨이 치솟는다구요.
너무 울화가 치밀어서 '모든 사람들이 아이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구요!' 했더니 문제가 더 심각해졌답니다.

헉 이렇게 차가운 인간이 있다니...!


가끔 미국 시트콤을 보면 미국인들이 단체로 '허~억~' 하면서 오버스럽게 놀라는 장면이 나오죠?
아이를 안 좋아한다고 말하면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약간 그런 싸~한 분위기가 되버리죠. (개를 안 좋아한다고 말해도 이런 반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죠?)
공개적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겉으로는 쿨하게 별 일 아니라는 척해도 속으로는 '세상에... 아이를 안 좋아한다니 어떤 인간인지 알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사실 아이는 좋아합니다만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자연히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지만 어제 읽은 그 기사의 한 대목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네요.

 

In children, we cheat death.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속인다.

 

'cheat death' 라는 표현은 '죽음을 속여 벗어난다'는 말로 즉, 죽음을 모면한다는 뜻이죠.
나의 유전자를 가진 또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내고, 또 그 아이의 아이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거죠.
삶과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떠나 유전학적으로 따지면 맞는 말이잖아요.
나는 죽어도 내 자식의 몸에 '나의 생물학적 정수(essence)' 가 그대로 살아 있을테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아이가 있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적어도 몇 배는 오래 사는 셈이네요.
반면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이 다 하면 뒤 돌아보지 않고 존재의 소멸을 맞이하겠죠.
요즘 '아빠 어디 가'를 보면 아이 있는 분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지만 '나는 나의 영원한 아군'이기에 제 결정에 만족합니다. ^^ 
 
아이 있는 분들, 없는 분들, 아이 낳을 분들, 안 낳을 분들 모두 행복하게 잘 살자구요~ ♡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