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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미국 친구에게 태릉선수촌 이야기를 해줬더니 반응이?

by 이방인 씨 2013. 2. 2.

어제 오늘 박태환 선수의 포상금 박탈에 관한 기사를 보니, 불현듯 지난 밴쿠버 올림픽 때 미국 친구와 한국의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실 박태환 선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연상작용으로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당시 미국인들의 시선은 바로 이 남자, Shaun White에게 향하고 있었습니다.

 

 

 스노우 보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 Shaun White 인데요.
2006 토리노, 2010 밴쿠버 스노우 보드 Halfpipe 금메달리스트입니다.

 

우리에게 김연아 선수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Shaun White이 있었기 때문에 벤쿠버 올림픽을 전후하여 TV에서는 훈련 다큐멘터리까지 방영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 방송을 봤는데 토리노 올림픽 이후 돈방석에 올랐던 그는 콜로라도주의 깊은 산 속에 개인용 Halfpipe 를 설치하고 외부의 출입이 통제된 가운데 훈련을 하고 있더라구요.
파이프나 기타 훈련시설의 훌륭함은 뭐 말할 것도 없었죠.
그리고 며칠 뒤 미국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Shaun White 은 압도적인 기량으로 두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친구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포츠도 부익부 빈익빈인게 씁쓸해... 물론 재능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렇게 완벽한 개인 시설에서 훈련하는 부유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어마어마한 기량차를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 같아.

 

그런데 친구의 생각은 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선수들도 어딘가 훈련장은 다 있을 텐데 뭐.

그래도 저렇게 맞춤형 고급 훈련시설은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걸.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출발지점이 다른 셈이잖아.

하하하하. 애초에 모든 선수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훈련하는데 어떻게 출발선을 똑같이 지정하겠어? 그건 Shaun White뿐만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라고.

 

하길래 저는 어디나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웃으며 태릉선수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을 위해 국가가 단체 훈련시설을 만들어 거의 모든 종목의 대표선수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함께 훈련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야기를 다 들은 친구는 이런 얼굴입니다. 그랬구나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국가대표라 할 지라도 선수들의 훈련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훈련을 하는지 오로지 선수의 계획에 달렸죠.
단체종목도 시합을 앞두고서는 한 곳에 모여서 훈련을 하지만 한국처럼 집단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OO의 자유, OO의 자유, 아주 그냥 온갖 자유에 목을 매는 미쿡인답게 한 곳에 집합시킨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번 더 물었습니다.

 

그래, 경제력 차이가 있는 국가간의 훈련환경 차이는 피할 수 없다고 쳐야겠지.
하지만 만약 Shaun White와 올림픽 출전권 경쟁을 하는 다른 미국 선수들이 개인 파이프도 없고 최고의 코치도 없는 환경에서 훈련한다면, 그들이 Shaun White와 경쟁을 하는 게 공정할까?
한국의 선수촌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환경을 가질 수 없는 선수들도 재능과 노력만 있다면 국가가 최선의 훈련시설을 보장하는 제도인 거야.

 

했더니 스포츠 경쟁의 형평성에 있어서는 참 좋은 시스템라고 고개를 끄덕끄덕했지만 그래도 역시 미쿡인인지라 한 곳에 모여서 집단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한 가지 더! 친구를 놀라게 한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국가에서 지급하는 연금입니다.
미국에서도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해당 연맹이나 스폰서가 포상금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국가에서 메달별로 포상금이나 연금을 주는 일은 듣도 보도 못하는 일입니다.
제 친구도 몇번이나 제게 되묻더라구요.

 

메달 따면 나라에서 돈을 준다고? 평생? 어째서?

국가를 위해 공헌을 했기 때문에 주는 거야.
너도 Shaun White가 메달 따고 성조기 흔드는 거 보고 엄청 좋아하고, 미국인들 다 기뻐서 난리났었지? 그런 선수들이 많을수록 국민들도 즐거울 뿐더러, 미국이 스포츠 강국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는 거잖아. 그럼 국가를 위한 공헌이지.

 

그랬구나  오... 난 한번도 그런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새로운 시각인 걸?

 

그리고나서 저희 둘은 그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할 때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문화차이' 에 대해 다시 한번 웃었죠.

태릉선수촌 운영과 국가대표 선수들의 연금 문제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선수촌 제도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선수들이 빈부에 상관없이 동등한 훈련 환경을 제공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과연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활약이 연금을 지급할 정도의 국가공헌이냐 아니냐를 두고도 설전이 있는데요.
국가공헌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국가대표 축구경기나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며 느끼는 기쁨을 생각하면 국가공헌은 아닐지 몰라도 국민공헌은 확실하다고 여겨지네요. ^-^

여담이지만 당시 올림픽때 미국 언론에서 지금껏 동계스포츠 약체라고 여겨지던 중국과 한국의 급속 성장과 놀라운 활약은 국가가 선수들을 적극 관리하는 제도 덕분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개개인의 자유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구 나라들은 선수촌 운영을 탐탁치 않아 했었지만 요즘은 올림픽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중국과 한국을 보면서 그들도 넌지시 집단 선수촌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더라구요.
실제로 어느 나라였는지 지금 기억은 안 나지만 유럽의 어느 나라도 전 종목은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몇몇 종목은 선수촌을 신설하기도 했다네요.

어느새 황금 토요일이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