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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하면 할수록 곤란해졌던 말 한마디

by 이방인 씨 2013. 1. 25.

침묵은 금이라는 말도 있고, 말은 하면 할수록 가벼워 진다는 말도 있지만 천성이 수다쟁이인 제게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격언들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다 보니 정말 하면 할수록 곤란해지는 한마디 말이 있었습니다.

 

It's okay~  괜찮아요~

 

저는 크게 화가 나는 일이 아니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라며 넘어가는 성향이라 평소에 밖에서 "괜찮아요" 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뭐가 그리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괜찮은 사람이예요. (응?? 이건 또 무슨 언어유희? ㅋㅋ)
사실 누군가에게 사과받을 때나, 무언가 권유 받을 때 "괜찮아요~" 하는 것은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평범한 예절이자 매너잖아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저와 비슷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말을 하면 할수록 손해만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혀로 곧장 직구를 날리는 미국인들의 보편적 특성상, 이들은 It's okay 라고 하면 곧이 곧대로 믿거든요.
한국에서는 "괜찮다"는 말을, 사양하는 예절 혹은 배려하는 예절이라고 생각해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 또한 예절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괜찮다" 고 말하는 건 정말 괜찮아서 그러는 줄 아는 사람이 더 많거든요.

물론 세상 어디에나 보편적 매너는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인들도 상대방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하는 일이 많지만 한국식 "괜찮아요" 는 미국 스타일과 조금 다릅니다.
괜찮은 건 괜찮지 않다고 확실히 말해야 하는 나라라는 걸 알면서도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이나 몸에 배인 습관은 고치기가 힘들어서 저는 여기서도 한국식 '괜찮은' 매너를 고수해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니 두 가지 부작용이 생겼더라구요.

 

첫번째 - 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무언가 부탁을 받거나 혹은 제 쪽에서 양해를 해줘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큰 일이 아니면 It's okay 라고 지나갔더니 나중에는 정말 뭐든 개의치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어버렸습니다.

특히 대학 다닐 때 이런 일이 많았는데요.
미국에도 뻔뻔한 학생들이 존재하는데, 강의에는 나오지도 않으면서 다른 학생들의 노트나 심지어 교과서까지 숱하게 빌려가는 아이들이죠.
그런데 이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지 언변이 정말 사기꾼 못지 않더라구요.
거기 홀라당 넘어가서 몇 번을 빌려주었더니 나중에 그 강의실의 사기꾼들은 전부 저한테 몰려들더라는... ^^;;
심지어 어떤 아이는 그 강의가 끝나고 볼 일이 없어서 한 동안 만나지 않았는데 두 학기쯤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와서는 제가 지금 듣는 강의를 묻더니 자기도 다음 학기에 들을 거니까 노트와 교과서, 과제물, 시험지를 그냥 달라고 하더라구요.

장난하냐

너무 괘씸해서 안 주고 싶었지만 계속 연락 오는 것이 더 피곤해서 교과서만 빼고 다 주고 끝냈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나중에 새로운 강의 시간에 전혀 모르는 학생이 와서 그 친구한테 전해 들었다면서 이런 말을...

 

얘기 들으니까 네 노트 정말 깨끗하다더라~

 

헐  너희 같은 녀석들끼리의 비상연락망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사소한 예를 들었지만, 이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저는 아마도 Pushover 가 된 모양입니다.
Pushover 란, 떠밀고 지나간다는 뜻으로 '만만한 사람' 을 일컫는 말인데요.
제가 판 제 무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
스스로를 자책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었죠.

 

두번째 - 관심 없음? 열의 없음?

It's okay 라는 말을 자주 했더니 만만한 사람이라는 인상도 그렇지만 "무심한" 인간이라는 소리도 듣게 되더라구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It's okay. I don't mind/I don't care." 라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보니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같은 분위기를 풍겼나 봅니다.
누군가 이렇게 묻더라구요.

 

너는 정말 괜찮은 거냐, 아니면 그냥 허무주의자인 거냐?

 

아놔~ 이거야 원... 만만한 인간이냐 VS. 허무한 인간이냐 둘 중 택일하게 생겼구만. 
아... 무척이나 피곤하구나... 역시 선택은 힘들어!

 

묻지 마라, 묻지 마.   그냥 되는대로 얻어진 운명이니 묻지를 마라~  

 

이 일 이후로 저는 It's okay 를 남발하는 대신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는 돌직구를 던지는 습관을 길렀답니다.
이게 과연 미국화 되어가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맘 같지 않은 세파에 시달리며 나이 먹어가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미국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괜찮치 않으면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에게 "괜찮치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서 꾹 참거나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서로의 입장차 때문에 It's not okay 라고 말하는 게 그리 큰 일이 아니거든요.
다만 왜 괜찮지 않은지를 감정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랍니다. ^-^

끝으로 퀴즈 하나 드립니다~!

그러니까 저는 만만한 인간일까요? 허무한 인간일까요?  ㅋㅋㅋ

 

정답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