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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미국 친구에게 듣기 전까지 깨닫지 못했던 독특한 한국 문화

by 이방인 씨 2013. 1. 21.

미국에는 아시안계 한류팬들이 정말 많은데요.
제 주변의 아시안들은 거의 다 한국 방송을 챙겨 보는 정도입니다.
이건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아시안계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일례로 저희 옆집 중국계 미국인 3세 아주머니는 한국 드라마 골수팬이신데 보기 편한 미니 시리즈 뿐만 아니라 선덕여왕 같은 대하 사극까지 모두 소화하십니다. ^-^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보기도 하지만, 아직도 한국 DVD 렌탈샵을 이용하고 있는 분들도 있구요.

모든 한국 방송은 당연히 영어 자막 처리가 되어 나오는데요.
어느 날 한국어를 공부해서 조금 할 줄 아는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등장 인물 이름이 발음과 자막이 너무 다른 때가 있는데 이거 왜 이래?

 

저는 발음과 자막이 다르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화면을 같이 보다가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친구가 의아해한 상황은 이렇더라구요.

극 중 남성의 이름이 철수 (예를 들어) 인데 철수에게는 부인과 아들 영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철수의 부모님이 아들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소리도 "철수"고 자막도 철수인데 부인이 철수를 부를 때는 자막에는 그대로 "철수" 라고 나오는데 소리는 "영수 아빠" 였던 것이죠.
부인은 남편을 이름 대신 "영수 아빠" 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아마도 한국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혼란을 줄 까봐 자막은 "철수" 한 가지로 통일한 것 같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뒤 한참 웃다가 친구에게 이러 저러해서 부인이 부를 때는 달랐던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묻네요.

 

그럼 한국 가면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를 David이 아니라 Julie's dad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푸하하하하하하. 한국말로 아내가 남편을 "영수 아빠" 하고 부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Julie's dad" 라고 부른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웃긴지요...
한국인이라고 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 뿐더러 외국인들은 그냥 자기네 문화에 맞게 부르면 된다고 마무리 해줬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사람을 이름 대신 "누구 아빠/엄마" 로 부른다는 것은 꽤 신기하게 느껴졌을 테죠.

저희 어머니도 저희 아버지를 "OO 아빠" 라고 부르시기 때문에 제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친구에게 질문을 듣고 나니 왜 우리에게 이런 호칭 문화가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또 한참을 멍 때리는 김에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하는 척 좀 해봤습니다.


첫번째 - 한국 부부들에게 자녀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 아닐까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적정 거리를 지키는 미국 혹은 다른 서양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인의 인생과 아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분이 많잖아요.
저도 블로그 시작하며 알았지만 인터넷상의 닉네임 중에도 OO 아빠, OO 엄마, OO 맘 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이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부모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런지요.

또한 일상은 물론이고 인생의 중심이 아이가 되는 부모님들도 간혹 계신 걸 보면 한국인들에게 자녀의 존재감이란 자신의 이름 대신 OO 아빠/엄마로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두번째 - 가벼운 애칭을 쓸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이건 저희 이모네 부부를 관찰하다가 유추해 낸 가설(?) 인데요.
이모네 부부가 젊은 시절에는 "자기야, 자기야" 하시면서 지내시더라구요.
참고로 두 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신 동갑내기십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도 생겨나고 두 분 다 어느 정도 연세가 드시니 호칭이 "여보" 혹은 "OO 아빠" 로 바뀌어 있더라구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자기야" 보다는 조금 더 존칭에 가까운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모가 이모부를 "OO 아빠" 라고 부를 때는 가족 모임이나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기야" 라는 애칭이 조금 쑥쓰러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뭐랄까 한 가정의 가장을 조금 더 무게감 있는 뉘앙스로 부르는 것은 아닐까 싶었죠.


아까 미리 말씀드린대로 저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인 "멍 때리는" 와중에 잠시 생각을 끼워넣는 바람에 헛다리 짚었을 수도 있지만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요. ^^;;
제가 간단히 언급한 두 가지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을 테니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상쾌한 한 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