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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미국에서 보니 더 황당한 '강북 멋쟁이' 논란

by 이방인 씨 2013. 1. 18.

요즘 인터넷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접하셨을 핫 이슈가 바로 '강북 멋쟁이' 로 대표되는 박명수씨의 음원들이죠?
저도 평소 무한도전을 즐겨 보기 때문에 박명수의 어떤가요 편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래들은 제 취향이 아니라 그냥 방송에서 한번 듣고 웃어 넘겼는데, 음원들이 발표된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논란을 접하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네요.

 

예능 프로그램의 수준 낮은 음원 발표가 가요계를 교란하고 업계에 피해를 준다.

 

는 주장을 하는 가요계 종사자들의 항의가 거셌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익명의 업계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진 뮤지션들도 볼 멘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이래 저래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분들의 주장을 들으니 몇 가지 의문이 드네요.

 

첫번째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셔야죠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이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이 대중의 취향 혹은 수준을 질타하는 오만이었습니다.
이렇게 "질 떨어지는" 곡이 음원 순위 1위를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항의였는데...

아이구~ 이것 참... 수준 낮아서 송구스럽게 됐구만요.   

일각에서는 박명수씨의 곡들이나 요즘 차고 넘치는 아이돌들의 노래 수준이 거기서 거기라는 말도 하지만 곡들의 수준 비교를 떠나서, 그리고 음악의 수준을 결정하는 절대 조건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논쟁을 제쳐두고서, 무엇보다 대체 왜 대중이 꼭 수준 높은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되는 건가요?

대중들에게 음악을 구매하는 것은 그 날 점심을 무얼 먹느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음악과 음식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라는 행위의 속성을 생각하면 말이죠.
내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낼 때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것은 개개인의 욕구 아닐까요?
게다가 음악감상 같은 '취미생활' 이라면 타인의 평가보다 주관적 취향이 앞서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이나 감동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3-4분 남짓한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만약 제가 오늘 점심으로 수준 떨어지는 패스트 푸드를 먹고 싶다고 결정했을 때

 

아니!!! 그런 질 떨어지는 음식을 먹다니...! 도저히 좌시할 수 없소이다!!!

 

하며 들고 일어나는 요식업계 관계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은 패스트 푸드만 골라 먹겠다해도 그 결정을 질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 자신뿐이겠죠. (아니, 우리 엄마 하구요... ^^;;)

대중의 음악 수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오만하게 훈계할 일이 아니라 우아하게, 품위있게 원하는 수준에 맞는 대중을 찾아가심이 어떨런지요?
우리 민족에게는 예로부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는 평화로운 해결책이 있지 않습니까?
절이 있어 중이 기거할 수 있듯이, 연예산업이란 건 태생부터 대중이 있으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두번째 - 정의감 발현의 조건?

자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을 홍보하고 그 음원 수익을 거둔다며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의견이지요.

그런데 공영방송사들의 사사로운 방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업계 종사자들의 '바른 말' 은 본인들의 이익이 위험에 처했을 때만 터져 나오는 것 같네요.
대의만 놓고 보면 굉장한 사회 의식이나 정의감의 토로처럼 느껴지는데 결국 속을 들여다보면 "너 때문에 내 돈줄이 끊기게 생겼다!" 와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구요.
예전에 영화배우들이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며 시위했을 때 어느 한국분이 날리신 일침이 떠오릅니다.

 

그래, 우리는 너희들 부자 만들어줘야 되니까 국산 영화 봐야 하고, 너희는 우리가 준 돈으로 외제차, 외제옷으로 떡칠해야 되니까 시위하는구나.

 

다소 비약이 섞이긴 했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죠?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공익을 위해 일어선 정의의 사도 코스프레나 하고 있으니 대중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정당한 논리가 없을 때 도덕·윤리를 들먹이는 것은 가장 쉬운 공략법이긴 하나 설득 당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약점이죠.
차라리 내 밥을 나눠 먹는 게 기분 나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라도 하시는 것이 어떨지요.
그러면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할게요.

 

세번째 - 정말 가요계를 무력화시키는 주범은 누구일까요

코미디언이 고작 2달만에 만들어 낸 여섯 곡에 초토화된 음원차트를 보며 무력한 현 가요계의 현실에 한탄한 관계자들도 많았다고 하죠?
그리고 그 원망이 대중과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방송사로 향한 것 같은데요.
애초에 가요계를 그렇게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든 것이 과연 누구인가 궁금하네요.
다 똑같은 아이돌들이 판 쳐서 그렇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연예 제작사들이 이처럼 기득권 사수에만 목을 매고 있으니 그런 것은 아닐까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쇼비지니스 산업이 있는 미국을 보면 전체 시장을 늘리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밥 솥이 커져야 먹을 수 있는 밥도 늘어나는 거지 그냥 들고 있는 밥그릇만 크면 뭐하겠어요...

만약 미국 가요계 종사자들의 의식이 지금 한국의 업계 관계자들과 같았다면 강남스타일의 빌보드 입성은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우리에게야 이미 십년이 넘은 내공이 쌓인 뮤지션이지만 미국 가요계에서 PSY는 오락 프로그램 거리도 안 되는 존재였을 겁니다.
게다가 강남스타일도 어떤 평론가들에게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구요.
그럼에도 미국 연예산업계는 PSY씨의 빌보드 입성을 평가절하하거나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 미국 대중들을 훈계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 세계 음악 차트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 2위까지 등극한 그를 미국 가요계를 교란시키며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 말하지도 않았구요.

오히려 PSY씨의 성공으로 인해 미국 연예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미국에서 '장사' 가 안될 거라고 여기던 비영어권 노래, 게다가 아시안도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법만 알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본인들도 몰랐던 수요가 있다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이제 공급하려는 업계도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중의 다양한 욕구에 부합하기 위해 업계도 부지런히 발전해야 외면 받지 않겠죠.
단순히 음악의 질을 높이는 발전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의식 수준도 향상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한국의 연예 제작사들처럼 아이돌 그룹 하나만 히트시키면 된다는 생각이나, 이제까지 쭉 해 온 방식으로 내 자리만 뺏기지 말자는 결심으로 일관하다가는 욕구불만 대중들과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 같습니다.


연일 인터넷 뉴스란을 장식하고 있는 강북 멋쟁이 논란이 참 황당하기에 연예 블로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어 봤습니다.
미국 이야기 들으려고 오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
내일은 미국 친구들의 살벌한 싸움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너무 실망 마시고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