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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가 교포라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 사연

by 이방인 씨 2012. 9. 11.

방금 블로그 1주년 감사의 말씀(?) 을 발행했기 때문에 1일 1포스팅의 원칙에 따라 그냥 살짜쿵~ 넘어가려고 했었습니다. ㅋㅋㅋ
그런데 그랬다간 2주년은 오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

다시 모든 것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제 닉네임이자 블로그 제목인 "이방인" 으로서의 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이방인" 이란 단어는 어쩐지 불안하고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이런 두 가지의 반응을 경험했답니다.

한국분인 경우 - 아휴~ 타국에서 고생하시네요. 외로우시더라도 힘내세요~

같은 교포인 경우 - 여기서 잘 살고 있는 교포들이 본국인들의 눈에 적응 못하는 이방인으로 비춰질까 걱정됩니다.

이 두 가지 다 저의 의도와는 사뭇 달라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답니다.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터를 잡은 고향 마을에 살 때는 저 역시 "이방인" 이란 머나먼 곳에서 떠나와 정처없이 헤매는 방랑자라는 인상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이 먼 곳으로 이주해 오랜 시간 살다보니 결국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방인" 이라는 단어는 "어딘가의 누구나" 라는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개인적 성향이지만, 어느 한 군데 속하지 않고 자유롭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스스로 "이방인" 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교포" 라는 단어는 의외로 실감하기 어려운 말이었답니다.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미국으로 영구이주해 살면서도 "미국에 왔다" 는 인식이었을 뿐 "한국을 떠났다" 는 마음은 아니었거든요.
아마 제가 직접 이민을 결심한 1세가 아니라 그저 부모님을 따라 온 1.5세라서 그랬던 것도 같아요.
물론 이것은 교포 개개인이 모두 다를 것이라 예상됩니다.
실제로 이민 온 첫 날부터 비장하게 마음을 다 잡고 "이제 우린 살아도 여기서, 죽어도 여기서 끝을 봐야된다" 하는 사람들도 봤고, 고민 끝에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도 봤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각자 믿는바대로, 또 마음에 와 닿는대로 사는 것이죠.

어쨌든 저는 이민와서 4-5년이 지날 때까지도 제가 교포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포라 함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뜻한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나봐요.
그런데 어느 날 싫든 좋든 그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작은 일이 일어났죠.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했었는데요.
그 당시 저와 제 친구의 메신저 대화 내용의 한 토막입니다.

친구: 야, 니네 대통령은 또 그 아저씨더라?

나: 어? 아.. 부시... 그러게 말야. 또 되버렸네...

친구: 니네 나라는 거의 다 재임되는 모양이다?

나: 어?.. 아.. 그러게...

친구가 말하는 "니네 대통령" 은 미국 대통령이었고, "니네 나라" 는 미국이었죠.
제가 더 이상 한국에 살고 있지 않은데다가, 한국인 신분도 없으니 친구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예상치못한 충격이었습니다.
뭐랄까, 내 신분이 타인에 의해 정의내려진 느낌이랄까요.
친구에게 "아냐, 나도 너랑 똑같은 한국인이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체감 혹은 소속감이라는 감정은 혼자서 느끼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때부터 제가 "교포" 임을 실감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제 정체성이 바뀐 건 아니지만요. ㅋㅋㅋ
그저 본국에 있는 한국인들과 같을 수는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 뿐이죠.

어차피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재미교포든, 검은 머리 외국인이든 결국 외계인이 침공하면 모두가 지구인으로 대동단결 아니겠습니까?
위기에 순간에 뭉치면 그걸로 된거죠 뭐. ㅋㅋㅋㅋ
인종 전시장이라는 미국에서 살아보니 인류를 딱딱 구분해서 카테고리화하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민족성이나 고유의 문화를 소중히 지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죠.)
결국은 어떻게 이 세계의 다양한 삶의 가치를 포용하고 사이좋게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네요.
우리는 모두 Citizens of Earth 니까요.

어라랏.. 제가 교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다가 어째서 끝은 We are the World 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렇지만 좋은 말이지 않습니까?
We are the World!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제 글은 모든 교포를 대변하고 있지 않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