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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장생활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 미국인 직장 상사

by 이방인 씨 2015. 7. 26.

미 아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저는 6월 1일자로 이직을 했답니다. 새로운 환경, 업무, 상사, 동료들에 적응하느라 마음 바쁘게 두 달여를 보냈죠. 이제 제법 느긋해졌기에 다시 블로그를 돌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바로 이겁니다!


내 직장 상사를 소개합니다.


간단히 저의 현 상황부터 말씀드리자면 말이죠, 부장급 상사도 여성, 그 위 차장급 상사도 여성, 또 그 위 이사급 상사도 여성... 한마디로 시하!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세 분 모두 갱년기 증상으로 고생하시고 계시다는 사실!! 대표적 증상으로는 둘이 있다 하나 죽어도 다음날에야 어렴풋이 기억나는 다.소. 심각한 건망증과 웬만한 롤러코스터 부럽지 않은 아찔한 Mood swing이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병원과 놀이공원 사이를 오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직장에 다니고 있을 뿐인 이방인 씨랍니다.

지난 주에 이런 일이 있었습죠. 저희 부서 서열 No.1 상사와 업무 분담을 하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쌓여있는 파일을 딱 반으로 나누어 반씩 맡아 처리하기로 하고 몇 시간째 별 말 없이 열중하고 있었죠. 그런데 상사가 보고 있던 파일에 서류 복사본이 누락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럼 가서 서류 복사해 올까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야, 이건 내가 맡은 파일이니까 내가 할게. 방인 씨는 방인 씨 분량 마무리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열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제가 가서 서류를 준비해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오나! 여기는 미국, 상대는 미국인, 저는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제 할 일을 계속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 경험으로 봤을 때, 제대로 된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에게 '시켜야 하는 일' '시킬 필요 없는 일', '시켜도 되는 일' '시키지 말아야 하는 일'을 잘 구분하거든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경험에 한하면, 잔심부름은 시키지 말아야 하는 일에 속합니다. 복사, 서류 및 기타 물품 가져 오기 등등의 간단한 육체노동은 자신이 직접 하죠. 저는 지금껏 자기 손발 편하자고 직원들에게 잔심부름 시키는 상사는 만나본 적이 없답니다. (물론 사장급이나 회장급 상사는 다르겠죠. ^^;;) 그러한 목적으로 고용된 개인 어시스턴트가 아닌 이상, 부하직원은 수행원이 아니니까요. 현재 저의 층층층 상사 세 분 또한 부하 직원들에게 그런 심부름은 시키지 않습니다.

어쩄든 자신이 직접하겠다고 하시길래 저는 신경쓰지 않고 제 일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게 [짜증 + 신경질] 콤보를 시전하는 상사님! 어찌된 일일까요... 직접하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뒷끝작렬인 걸까요??

"이게 뭐야?! 복사를 잘못했네! 이 서류가 아니잖아!"

알고 보니 방인 씨의 상사는 서류 1을 복사해야 하는데 서류 2을 복사했던 것입니다. 원인은... 갱년기 건망증...으로 사료되옵니다.

"내가 잘 깜빡깜빡하는 거 알면 방인 씨라도 체크를 해 줬어야지! 젊은 사람이 나보다 나을 거 아냐!"

하며 성질을 파르르~ 내시더라구요.

"아하하하하! 저는 타고나길 붕어 기억력이라 더 형편 없어요."

하고 웃었지만 속으로는 '아... 차라리 어제 내가 복사해 오는 게 나을 걸 그랬다.' 싶더라구요.

아니 내가 상사의 기억중추마저 관리해야 한단 말인가!
그 업무는 연봉에 포함된 겁니까, 아니면 건당 수당으로 받는 겁니끄아~!


소문으로만 듣던 No.1의 히스테리를 직접 겪고 '몸 사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조용히 지내오던 차, 며칠 전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윗층에서 직장내 최고봉의 비서가 내려왔더군요. 운명의 장난으로 하필 제가 상대를 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운명의 신은 장난치는 것이 성에 안 차 해코지를 하고 싶으셨던 모양인지 그 비서의 성격이 완전 공.주.마.마.!! 마치 자신이 회장인양, 비서인 듯 비서 아닌, 비서 같은 그런 마마님.

비서마마가 말하길, 

"최고봉께서 이러 저러한 것을 원하시니 당장 대령하거라~"

하여 방인씨가 대답하길,

"오호~ 통재라, 현재 이러 저러한 것은 다른 부서에서 넘겨받아야 업무가 마무리 되기 때문에 저희 부서에는 없는 줄 아룁니다."

하자 다시 그 비서가 받기를,

"이런~ 무엄하고 하찮은 것을 보았나! 네 정녕 내 말을 듣지 못한 게냐! 최고봉께서 원하신다 하였다!"

그렇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없는 방인씨가 재차 말하길,

"없는 것을 어찌 만들어내라 하십니까..."

여기까지 말이 오가자 그 비서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30분 안에 가져오라고 성화더군요. 저는 그 일은 제 마음대로 대답할 수가 없으며, 정 그렇다면 부서 책임자와 의논하라며 상사를 부르러 가려는데 그 비서 공주,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최고봉과 그 수뇌부를 위해 일하는 거야. 우리가 원하는 걸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네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거 아니겠어?"

상사를 부르러 걸어가고 있던 방인 씨, 급하게 U턴 그리고...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나 는 최고봉도 아니고 수뇌부의 일원도 아니지.
비서실장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비서 4일 뿐더러,
더 중요한 사실은 나는 너의 부하직원도 아니란 말이지.
그러므로 네가 고.따.구.로. 말하는 걸 내가 참을 이유가 없는 거지.


그 비서 공주마마, 화난 얼굴이 토마토가 됐습니다. 그러더니 이런 협박을 하더군요.

"너 오늘 윗층 전화 받을 준비나 해라."

윗층이라 하면 높으신 분들의 사무실을 칭하는 말로, 자기 상사에게 일.러.바.쳐. 저를 문책하겠다는 거죠. 성질은 있어가지고 일단 지르고 본 방인 씨도 윗층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듣기 싫은 소리 좀 들어야겠구나 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사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빴습니다.

그 윗층은... 제가 아니라 제 상사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아오~~~
이~거~슨~ 내리문책!
윗층부터 밑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동안,
분노는 증폭을 거듭하며 촛불 하나로 시작된 것이 마그마가 되어
내 육신과 영혼을 이렇게 불태워버리는 것!




가시방석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역시나 제 상사는 사과의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원같은 시간이 지나 통화가 끝나고 저는 또 한 번 닥쳐올 히스테리 폭풍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쩐지 상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계속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전부절못하다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상사에게 가서 어색하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 그 공주마마가 화가 많이 나..셨..대요?? 아..하하하하하하"

눈치를 살피는 듯한 저를 보며 상사가 내뱉은 한마디는,


"그런 건 공주가 아니라 X년이라고 하는 거야."

"X년이라고 하는 거야."
"
X년이라고 하는 거야."

"X년이라고 하는 거야."


약 1.87초의 정적 뒤,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둘이 어찌나 나뒹굴며 웃었는지 배가 당기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답니다.


"이런 일로 신경쓰지 마.
그런 사람들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게 뭐야.
우린 그냥 우리 일만 하면 돼."

 


상사님은 관대하시도다


이리하여 저는 싹트는 사랑과 자비 속에 무사히 퇴근할 수 있었답니다. 사람을 울렸다 웃겼다, 들었다 놨다 하는 저의 BOSS 미워할 수가 없네요. 앞으로는 또 어떤 사건/사고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저는 과연 새 직장에서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 앞으로도 방인 씨의 신나는 블로그에서 확인하세요!

여러분 신나는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