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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에게 타이 마사지 받다가 살짝 웃었던 이유

by 이방인 씨 2014. 9. 29.

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계속 몸이 피곤하다 징징거리잖아요? 특히 목과 어깨가 자주 뭉치고 결리기에 마사지라도 받아 볼까 싶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예약을 했습니다. 보통 미국인들이 가장 무난하게 받는 마사지는 Swedish massage라고 해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마사지사가 알아서 모든 걸 해 주지요. 그러나 제가 주변에 알아본 결과, 집에서 가까운 곳에 솜씨 좋은 타이 마사지사가 통증이 있는 부위에 Clinical massage를 잘한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약이 꽉 차 있길래 1주일이나 기다렸다가 드디어 토요일에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타이 마사지이긴 해도 미국 땅에서,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정말 본토 출신 타이 마사지사를 만나리라 기대하진 않았기 때문에 중년의 백인 여성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차라리, 그녀의 방이었죠.

 


(bbc.co.uk)

티벳 불교에 심취해 있다는 그녀의 방에는
각종 불상과 불경들이 놓여 있었고,
무엇보다 향을 피워 놓은 탓 정말 절에 온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1993년부터 타이 마사지를 해 왔다는 말에 '그 정도 경력이면 믿을 만하겠구나' 싶어 편안히 몸을 뉘였습니다. 평소에 목과 어깨가 결리고 두통도 잦다는 저의 말을 듣고 그녀는 제게 도움이 될 만한 이런 저런 스트레칭 동작과 운동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스스로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매일 매일 꼭 스트레칭을 하라며 요가나 필라테스 혹은 태극권을 배워보라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스스로 매일 그런 걸 하는 사람일 것 같으면 
뭣하러 Lazy man's Yoga를 받으러 오겠냐구요...


미국에서는 타이 마사지를 Lazy man's Yoga라고도 부른답니다. 스스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들이 타인의 힘을 빌어 요가를 한다는 뜻이지요. Lazy man들이 없다면 타이 마사지사들은 다 굶어 죽을 텐데 스스로 하기를 권하다니!!!


돈벌이에 초연한 마사지사였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예약된 1시간의 마사지를 마친 후에도 약 15분간 제게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요가 동작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랫동안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불교를 배우고 명상을 하며 요가로 심신을 가꿔왔다며  코브라 자세, 고양이 자세까지 무리 없이 하다가 갑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살~짝 낑낑거리더군요. 뭘 하는가 싶어서 쳐다 보고 있는데 그녀가 말하길,


"이건 Lotus(연꽃) 라는 건데 쉽지 않아서 나는 Half-lotus 밖에 안 돼요."

심신을 가꿔온 그녀마저 버벅거리는 동작이 뭔가 싶어 가만히 보니 바로 이거 더라구요.

 


(Wikipedia.org)

풉~!

이 자세, 동양 여성들 중에는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도 아무 불편 없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거 말하는 거예요?" 하며 제가 직접 해 보였더니,


"Oh yeah, yeah~ 그거 그거예요! Oh my~ 나보다 훨씬 잘하잖아요!
그걸 할 줄 아는데 여긴 왜 온 거예요?!!!
이제부터 집에서 직접 매일 요가를 해요."


역시... 일관되게 돈벌이에 초연한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뻣뻣한 저도 쉽게 할 수 있는 Lotus지만 골반이 안쪽으로 모인 남성형 골반을 가진 사람이나 서양인들은 위 사진처럼 발을 올리기 버겁다더라구요. 아니 이 쉬운 게 왜 안 될까 싶은데 눈 앞에서 그녀가 낑낑거리는 걸 보니 신체 특성상 안되는 건 안되는가 봅니다. 그녀가 제 다리를 요리조리 곁눈질하며,


"아니, 어떻게 그렇게 쉽게 들어올리는 거예요??"


하길래 살짝 웃음이 새어나온 저는,


"동양인이라 그런 걸 거예요. 동양인과 서양인은 골반의 각도가 다르다고 하니 아마 그 때문이겠죠."


이렇게 의도치 않게 그녀의 half-lotus 옆에서 만개한 lotus를 자랑해버린 후, 문 밖을 나서는 저의 뒷통수에 대고 지치지도 않고 또 외치더군요.


"이런 데 오는 것보다 집에서 매일 10분이라도 스트레칭하는 게 더 중요해요! 물도 많이 마시구요.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만이 우리 삶의 의미라는 걸 잊지 말아요~~"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어쩐지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타이 마사지 첫 경험이었는데 강도가 너무 셌나 봐요. 목과 어깨의 결림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이건만, 지금은 아예 목과 어깨를 돌리기도 힘드네요.

이건 뭐 마혈을 누른 거야 뭐야...
마사지사가 아니라 무림고수였단 말인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타이 마사지는 제게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정말 그 분 말씀처럼 이 나태한 육신을 스스로 돌보는 습관을 길러야겠어요.


여러분도 건강하고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