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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천진난만한 미국인을 만나니 즐겁지 아니한가

by 이방인 씨 2014. 7. 25.

즘 방인 씨에게는 일상의 깨알 같은 즐거움이 하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어린 미국인 친구와 노는 일(?)인데요.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짐작하기로는 저보다 한 열 살쯤은 어린 것 같습니다. 이런 파릇파릇한 친구를 어디서 알게 되었는고 하니, 제가 요즘 자기계발 겸 저녁 클래스를 하나 수강하고 있거든요. 지난 달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많더라구요. 첫 날부터 옆에 앉게 된 인연으로 한 미국인을 새로 사귀게 되었는데 이 친구, 정말 재밌어요.

"난 그~런 거~ 몰~라요~ ♪♬♩"

하는 순진무구 천진난만 전형적인 미국인이랄까요.


뭘 그렇게 모르는지 한 번 들어 보세요.


첫번째 - 남들의 시선? 체면?
그런 거 몰라요~

미국인들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도 나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신경 쓰며 사는 사람도 많지 않구요. 그래서인지 체면 차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수치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남들의 평가가 두려워 자신을 감추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즘 새로 사귄 이 어린 친구를 보면서도 자주 느끼는 건데 미국인들은 그런 면에서 참 자유로워요.

현재까지 이 클래스에서 시험을 두 번 치뤘는데요. 친구는 두 번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 했습니다. 앞으로 두 번의 시험이 더 남아 있는데 이 성적 그대로라면 낙제를 할 지도 모른답니다. 첫번째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앞자리가 6으로 시작하는 성적을 받았는데 시험지를 받자 마자 저한테 보여 주며 말하더라구요.


"이거 봐. 나 어떡해. C도 못 받았네."


솔직히 말하자면... 저였다면 그 시험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을, 아니 안 들켰을 거예요. 그 점수를 밝히고 싶지 않은 기분이 먼저 들 테니까요.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제가 여기서 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 봐도 시험 점수 나쁘다고 부끄러워 하거나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미국인들의 이런 면이 재밌기도 하고 어쩐지 부럽기도 합니다.

C도 못 받았다며 이걸 어쩌면 좋냐며 우울해하길래 "첫 시험이라 긴장해서 그랬을 거야. 다음 번에는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라고, 모범답안 위로를 건네고 2주 뒤, 두번째 시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물어 보니 "이번엔 잘 본 것 같다"며 좋아하더라구요. 게다가 옆에 앉은 다른 학생이 자기 시험지를 베끼려고 계속 힐끔거렸다며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흥분하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드디어 두번째 시험지를 돌려받는 운명의 그 날이 왔습니다. 친구는 지난 번보다 10점이나 하락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시험지를 받더니 제게 또! 보여 주며 말합니다.


"나 진짜 어떡해. 낙제하겠다."


또! 당황한 저는 어버버거리며 말했죠. "아니야, 앞으로 시험 두 번이나 더 남았잖아. 패스할 수 있어." 이러는 와중에도 친구는 시험 보는 동안 자신의 시험지를 힐끗거렸다는 학생의 시험 점수를 물어보더라구요. 더 웃긴 건, 그 학생도 아무 거리낌 없이 순순히 자기 점수를 불러준다는 거예요. 둘이 평소에 친한 것도 아니고, 대화도 한 적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 미쿡인들아,
너희 이런 면에서는 정말 So So Cool 하시다들~


친구의 시험지를 베꼈다는 의심을 샀던 그 학생의 점수는 88점이었습니다. 크~게 낙심한 친구는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연신 "나는 도대체 왜 시험 문제를 풀 수 없는 걸까. 왜? 왜?" 난리가 났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주차장에서 거의 20분 동안 저를 붙들고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왜 안 될까?' '난 교과서도 읽고 숙제도 하고 시험 준비도 했는데 왜?' '아마 난 이런 공부는 못 하는 사람인가 봐.' 하며 하소연을 하는 친구는 심각했지만 제 눈에는 그저 귀엽더라구요.

그렇게 순순히 자신의 '공부머리 없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참 신선했어요. 그런 말을 할 때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그런 친구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안 좋은 시험지는 누가 볼까 두려워 한시라도 빨리 가방에 넣던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구요. 이제와 생각하니 우습네요. 그딴 것쯤 온 세상이 다 알아도 별일 아닌데...


두번째 - 자신
감 부족? 그런 거 몰라요~

이 친구랑 대화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UP되어 있음을 느낀답니다.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고 하찮은 일에도 흥분하고, 어떻게 보면 귀여운 버전의 Drama Queen이랄까요. 하기야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아가씨니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죠. 시험지를 돌려받을 때만 빼고는 늘 즐거운 아이(?)랍니다.

성격도 어찌나 활달한 지 스포츠를 참 좋아하는데 지금도 아이들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제 귀를 의심했었답니다. 이 친구 키는 저보다 한 3cm 큰데 몸무게는 어림 잡아 한 20킬로는 더 나가 보이거든요. 아무리 봐도 스포츠와는 담 쌓고 지낼 것 같은 넉넉한 체구였는데 배구를 가르치고 있다니...

너 이 녀석, 사람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반전매력까지!


운동을 좋아한다는 이 친구, 주말이면 자신이 가르치는 배구팀 아이들과 함께 5K 마라톤을 즐기기도 한답니다. 먹은 뒤 신체활동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는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나는 운동을 싫어할 뿐더러 할 줄 아는 운동도 없다"고 털어놓으니 친구가 말합니다.


"난 모든 운동을 다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야."


오오~~ 진심 부러움과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다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5K라 해도 마라톤인데 힘들지 않아?"

"난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고, 자주 하니까 괜찮아."

"멋지다~ 5K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

"응, 난 1시간 5분 정도에 뛰어."

"으응~, 응?!"

나의 상식이 젠장맞을 수준이 아니라면, 5K는 분명 5Km를 말하는 건데...
5Km를 뛰.는.데. 1시간 5분???


아무래도 제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물었습니다.


"5K가 몇 마일이지?"

"3마일 정도"

맞구나! 내가 잘못 안 게 아니구나!
5K = 5Km = 3.1마일

내가 가끔 산책하는 코스가 왕복 3.4마일인데...
걸어서 갔다 와도 1시간이면 되는데..
어떻게 3마일을 뛰는데 1시간 5분이...

하늘 아래 믿지 못 할 것이 미쿡인들의 근자감이로다~


하지만 워낙 어린 친구라 이런 구석마저 귀여워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오랜만에 이 정도로 천진난만한 미국인을 만나니 즐겁고 유쾌하더라구요. 예전에 저도 같이 어렸을 때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간 곳 없는 어처구니를 찾아헤매이곤 했는데 이제는 제가 늙은 건지 여유가 생긴 건지 보고 있노라니 제 기분이 다 청량해집니다.

여러분도 상쾌한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