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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과 한국인, 서로 입맛에 안 맞는 옥수수 유감!

by 이방인 씨 2014. 5. 19.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어릴 적 습관으로 결정되는 것 중, '입맛' 만한 게 또 있을까요? 미국에서 십 수년을 살긴 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제게는 아직까지도 입맛에 안 맞는 미국 먹거리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예전에 포스팅한 바 있는 고구마구요.

2012/10/19 - [Stranger Meets America] - 미국에서 한국 고구마를 그리워하는 이유

오늘 이야기할 것은 옥수수랍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쪄 먹는 옥수수를 참 좋아했는데, 특히 탱글탱글한 알갱이가 쫀득쫀득한 찰옥수수라면 사족을 못 썼죠. 

 

윤기가 좔~좔~
침도 좔~좔~


그런데!!!
이민과 함께 찾아온 비극... 


미국에는 찰옥수수가 없더라구요!


옥수수에도 여러 종(種)이 있는데 찰옥수수는 한자로 납질종(蠟質種), 영어로는 Waxy Corn이라고 합니다. 옥수수 씨알이 양초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Waxy라는 이름이 붙었다네요. 찰옥수수는 마치 떡처럼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죠? 손가락으로도 깔끔히 떼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알갱이가 탱탱하구요. 이렇게 맛있는 찰옥수수, 미국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Waxy Corn을 식용으로 재배하지 않거든요. 당연히 미국 마켓에는 찰옥수수가 없고, 한국 마켓에 가면 원산지가 베트남이나 중국인 냉동 찰옥수수가 있는데 맛이 영~

미국인들이 간식으로 먹는 옥수수는 감미종 (甘味種)이라고 하는 Sweet Corn입니다. 단옥수수라고 부를 만큼 당분함유량이 많으나, 배젖조직이 치밀하지 않아 알갱이가 단단하지 않고 수분이 마르면 금새 쭈글쭈글해지죠.

 

이게 sweet corn인데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삶아도 달긴 참 달아요.
그러나... 단맛이 풍부하다는 것 빼고는 총체국 난국이랍니다.


무엇보다 알갱이가 너무 물러서 씹는 맛이 없어요. 생 옥수수 말고 통조림으로 만들 때 쓰는 종도 sweet corn인데, 통조림 옥수수를 맛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탄성(彈性)이 거의 없고 점도도 낮죠? 찰옥수수의 쫄깃함을 좋아하는 제게 sweet corn은 뭔가 한~참 부족한 옥수수랍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단점은, 먹을 때 치아 사이에 엄~청나게 낀다는 거예요! 알갱이에 탄력이 없으니 깔끔하게 떼어지지 않고 씹는 족족 조직이 터지면서 치아 사이로 들어가거든요. 미국에 와서 sweet corn을 먹으며 문뜩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으니...


이것이 치실 발명의 계기가 틀림 없을 것이야!
(치실은 1898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모든 발명의 영감은 먹.을. 때. 떠오르는 것이란 망상에 사로 잡혀 
일평생을 발명가가 되기 위 먹.고. 있.는. 이방인 씨
 


Sweet Corn을 먹을 때마다 속으로 '아~ 미국인들은 맛있는 찰옥수수도 평생 못 먹어 봤을 걸 생각하니 안타깝다...' 했는데 어느 날 저를 끄~암~짝~ 놀라게 하는 대발견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Expat Korea Forum을 구경하게 됐는데 '한국의 옥수수는 대체 왜 이런 거냐'며 미국인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더라구요.


한국의 옥수수는 너무 glutinous (찰진) 하고 딱딱한데 이걸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에도 찰옥수수 말고 Flint Corn (경립종)이라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옥수수도 있는데 아마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예요. 그 중 한 명이, 'sweet corn에 버터 바른 걸 먹어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맛있어할까~' 하길래 참을 수 없이 빵! 터졌습니다. 아까 제가 찰옥수수를 모르는 미국인들이 안타깝다고 말한 거랑 똑.같.잖.아.요.

 

이게 바로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버터를 바른 sweet corn on the cob입니다.
버터 바른 옥수수 한국에도 많은 것 같던데, (Sweet Corn종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 미국인 생각처럼 여러분 입에 맛있던가요? 


저는 여기서 버터 바른 sweet corn을 꽤 먹어 봤는데 분명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찰옥수수를 따라갈 순 없습니다!  아무리 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고, 그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입맛 만큼은 마음대로 안되나 봅니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난 외국생활이라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익숙함이 편안함으로 바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어떤 것들도 간직하며 사는 거죠.


그리하여 미국인과 한국인, 서로 옥수수가 유감일세~

 

여러분, 신나는 한 주의 시작 유후~

※ 입맛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니, 제 글은 모든 재미교포와 미국인을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 L.A.나 뉴욕의 한인 타운에서는 한국산 찰옥수수를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